오늘은 틴토레토의 <세족식>을 감상하려 합니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기 전에 먼저 관련 성경구절인 요한복음 13장을 함께 살펴보시죠.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3절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세족식은 최후의 만찬 중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순간이 가까웠음을 아시고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던 중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겠다고 나서신 것입니다. 틴토레토의 그림에서는 식사 중이었음을 상징하는 탁자가 그림의 가운데에 놓여 있고, 그리스도의 모습은 중앙에서 한참 벗어난 우측에 그려져 있네요.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베드로 사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아니 스승님께서 제 발을 씻기시다니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고, 옆에서 물항아리와 수건을 든 여종은 자신과 같은 비천한 존재가 마땅히 할 일을 그리스도께서 하시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무릎을 꿇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왜 틴토레토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그려 넣지 않았을까요? 세족식이 주인공답게, 영웅답게, '큰 맘을 먹고' 섬김의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마음에서 기획된 일이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것만 같습니다. 정말로 여느 종이 주인에게 그러하듯 구석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일이 섬김의 자세인가 보네요.
한편 만류하던 베드로가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림 속 그리스도의 왼편 뒤로 의복을 벗는 제자의 모습이 보이고, 식탁 왼편 바닥에 앉은 푸른색 옷을 입은 제자의 의복(마치 가죽 장화처럼 보이기도 해서 처음에는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을 다른 제자가 벗겨주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의 가장 왼편의 다른 제자도 신발 끈을 풀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대체로 제자들은 지금 그리스도께서 어떤 마음으로 자신들의 발을 씻어주려 하시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감격보다는 의아함에 가까운 듯한, 발을 씻어주겠다고 하시니 영문을 모르겠지만 그저 요청에 응하고 있는 표정들로 읽힙니다.
한편 예수께서는 제자들 중 한 명, 즉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그러고 보니 식탁의 왼쪽 뒤 문에 기대어 서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보입니다. 가룟 유다는 계획했던 대로 그리스도를 팔아넘길지에 대해 마지막 용단을 내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자신이 상상했던 메시아는 사회 변혁과 권력의 찬탈을 주도할 강력한 리더였는데, 종과 같이 제자들의 발이나 씻고 있으니 '역시 이건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는 중일까요?
제자들의 표정도 한번 살펴보시죠. 식탁에 팔꿈치를 괸 채 물끄러미, 의복을 벗고 있는 제자를 바라보고 있는 푸른 옷의 제자도 보이고, 그 왼편으로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논의하고 있는 듯한 초록빛 옷을 입은 제자와 갈색 옷을 입은 제자의 모습도 보입니다.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서로의 종의 모습으로 서로를 섬기라고 당부하십니다. 34절의 말씀에 따르면 섬김의 행위가 곧 사랑이는 점을 알 수 있네요. 또한 16절에서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는 점을 이르시며 우리가 살아갈 때에 창조주의 높으심을 기억하라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복되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림의 하단 가운데에 그려진 개는 충성심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키는 것이 창조주께 충성스러운 우리가 보여야 할 모습이라는 것을 틴토레토는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명에 충성스러운 모습으로 그리스도께서 사랑의 모본이 되어 그 사랑을 손수 실천하셨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시기까지 말이지요.
묵묵히 사랑하며 오늘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복되고 평안한 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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