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논술형 문항은, 두 지문의 화자 중 자신과 더 닮아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밝힌 후 자신의 성장을 위한 실천 방안을 제안하는 문제를 출제하였습니다. 첫 번째 화자는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인물이었고, 두 번째 화자는 아무도 자신을 평범하다고 여기지 않지만 자신만은 스스로가 타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과 조금 더 비슷한 인물을 선택한 후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중학교 때 친구가 자신에게 엄마가 장애인이라고 놀려서 속상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은 학생도 있고, 외모에 대한 놀림을 받을 때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었다는 이야기, 타인의 눈에 띌까 봐 늘 두렵다는 이야기, 똑똑하지도 않고 노래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도대체 잘하는 게 하나 없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는 이야기 등 영어 표현은 어눌하기도 하지만 저마다 인생의 애환이 담겨 있더군요. 이렇듯 학생의 글을 읽으면 학생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디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쉽던가요. (논술형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 꾸며내거나 다소 과장을 섞은 일화가 아니라면) 학생들이 표현한 자기자신은 학생의 16~17년 인생의 어느 한 단면일 뿐이고, 따라서 열 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글에 드러난 내용으로 학생을 파악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으니까요.
사람에 대한 이해도 그렇지만, 세상의 배움이란 도대체 끝이 없습니다. (이런 통달한 듯한 문장을 쓰기에 제 배움이 지나치게 짧긴 하네요.) 제가 글을 쓰면서,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주위를 관찰하고, 사색하며 나날이 깨닫는 점은,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사실 뿐이니까요. 요한 볼프강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는 여러 학문을 통달한 결과는 허무함이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습니다.
아, 나도 이제 철학, 법학, 의학, 게다가 신학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철저히 연구했다. 그 결과가 이 가엾은 바보 꼴이구나. 조금도 현명해지지 않았다. ... 그리하여 안 것은,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것뿐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23)
나는 공연히 인간 정신의 모든 보물을 긁어모았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이렇게 앉아 있으나 마음속에 새로운 힘은 도무지 솟아나지 않는다. 나는 털끝만치도 자라지 않았고, 무한한 것에는 한 걸음도 접근하지 못했다.(75)
저는 해당 구절을 읽으면서 전도서의 저자인 솔로몬이 떠올랐습니다.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정말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려고 이것저것 배우고 생각하고 글도 쓰며 아등바등 살아가는데, 부질없고 헛될 뿐이라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력을 멈추자는 교훈을 얻어서는 안 되겠지요. 배가 고파져도, 어차피 다시 내려올 것이어도, 우리는 밥을 먹고 산에 오를 운명이잖아요.
순간 순간의 의미와 감사할 일들을 발견하면서 말이지요.
저는 오늘 프리다 칼로에 대해 배우면서 그녀의 처절했던 삶 이면의 웃음과, 사랑과, 그리고 의미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때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을 접하고 정말 너무 괴롭고 우울했었는데, 오늘은 한 그녀의 삶에 대한 열정과 소망을 바라보게 되어 정말이지 감사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저도 정말 감사할 것들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논술형 문항 채점을 반 정도 완료한 것
잠시 낮잠을 잘 수 있었던 것
아이들과 함께 식사할 시간이 허락된 것
어제부터 <파우스트>를 오분의 일 정도 읽은 것
다음 수업 관련하여 읽으려고 주문한 책이 도착한 것
등 지극히 소소한 감사의 내용뿐만 아니라, 고통에 몸부림쳤던 모든 순간들에 대해서도 말이지요.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프리다 칼로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조국 멕시코의 전통을 상징하는 장신구와 의복을 착용하고 잠들었네요. 하늘나라로 부르심 받는 날, 저도 이렇게 '나 다운'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안한 밤과 기쁜 새날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묻지마 범죄뿐만 아니라 계속 되는 산불 소식, 건물 붕괴, 정전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마당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음이 기적이니까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금 결정의 위로 (12) | 2025.05.11 |
---|---|
자세히 보지 않고 자세히 보기 (6) | 2025.04.22 |
헌법재판소의 메타인지 가동을 요구합니다. (24) | 2025.03.30 |
지휘자를 통해 교사가 대통령을 보다 (22) | 2025.03.22 |
열심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16) | 2025.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