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한스 살리기 (한스 없애기?)

글을써보려는사람 2023. 9. 1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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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를 양산하는 사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를 자살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구두 장수 플라이크씨의 말마따나 한스가 건강을 잃을 정도로 모질게 공부를 시킨 학교의 교사들에게만 잘못이 있을까?

신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총명한 아들을 두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의 명예욕과 허영심, 비록 자신의 괴로움에 갇혀 있었을지언정 무책임한 모습으로 친구를 등진 하일르너, 홀로 남겨진 한스를 나병환자 취급한 사람들의 시선, 애인을 자처해 놓고 말도 없이 떠나버린 에마의 가벼움, 어느 하나 누구 하나 한스를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출처: 교보문고 인터넷서점



1.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어른들


2018년,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교육열에 경고장을 날리며 한국 교육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의문을 제기한 <SKY 캐슬>이란 드라마가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출처: SKY 캐슬 공식홈

한 달에 몇 백 혹은 몇 천씩 들여 과외를 시키고 재수 삼수 해서 모두다 의대를 보내고 싶어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부유한 집이든 가난한 집이든 대한민국의 상당수의 아이들은 유년기를 박탈당한 채 지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2. 영재를 내쫓는 영재교육

천재적 재능을 보여 과학고에 입학한 소년이 자퇴를 결정했다. 문제 푸는 기계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단다.

https://v.daum.net/v/20230820165001192

 

'천재' 백강현 과학고 자퇴…선배 엄마가 보냈다는 메일 보니

SBS 예능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천재 백강현군이 올해 입학한 서울과학고를 자퇴했단 근황이 전해졌다. 백군의 아버지가 자퇴 배경에 학교폭력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가운

v.daum.net

이 하나의 예를 두고 해당 학교의 학풍이나 혹은 한국의 영재교육 전체를 싸잡아 비판할 수는 없겠으나, 선발에 초점을 두고 있는 현 영재교육은 '영재를 만들기 위한' 사교육 열풍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322429&plink=ORI&cooper=DAUM

 

'과학 영재' 기르는 영재학교…입시 위한 사교육 발목

과학 영재 백강현 군이 서울과학고 자퇴 의사를 밝히면서 우리나라 영재교육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영재학교는 인재 양성과 대학 입시,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할 상

news.sbs.co.kr

 
이쯤에서 우리는 곰곰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우리 사회의 하일르너들은 자퇴한 것인가, 자퇴당한 것인가. 이 시대의 천재들은 어디로 등 떠밀려 가고 있는가.

 
 
 
 
 
 
 

3.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


최첨단 기술의 발달로 이동도, 소통도, 변화도 빨라진 댓가는 가벼움이다. ‘환승연애’라는 유행어는 가볍디 가벼운 인간관계와 무책임함을 정당화하는 사회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즘 중고등학생의 경우 가장 짧게 연애한 기간이 1주일 미만으로 가장 많고, 가장 길게 연애한 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이 가장 많다고 한다. (출처: 인권운동사랑방 (sarangbang.or.kr))
연인 사이뿐만이 아니다. 가족에 대해, 친구에 대해, 동료에 대해 우리의 눈초리와 말들은 너무도, 가볍다. 단물 빠진 껌을 뱉어버리고 새로운 껌을 씹기 시작하는 모습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변화하는 시대 속 신인류의 특성을 비판적으로만 바라보며 'good old days'를 외치는 목소리도 문제가 있겠으나, 또한 어느 누군가에게 이 순간의 나 또한 얄팍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겠으나, 진득하고 은근한 무게의 소실을 안타까이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껌이 아니기 때문에,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4. 광기


그리고, 내면의 불안과 분노, 고통을 잠재우지 못하고, 한스와 같이 자기 자신을 죽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불특정 다수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파스칼(1623~1662)이 "인간은 본질적으로 광기에 걸려 있다. 따라서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미쳤다는 것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보면 광기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게 분명하나, 전례 없는 이상동기 범죄(異常動機犯罪)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시대의 광기에 대해 우리는 끈질긴 설명과 해석을 시도해야만 한다.

 

 
 
 
 
 
 

글을 맺으며


이처럼 지금, 여기, 우리는 비운의 한스들을 적극적으로 양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영재교육의 나아갈 방향은 (나도 아는 바가 없어) 차치하더라도, 대다수의 아이들에게 자행되고 있는 인지적 및 정서적인 학대를 멈추어야 하고, 인간 존재의 가치에 대한 무겁고 엄중한 사유를 연습해야 한다. 그리고 각자 안의 광기를 해소하고 보듬으며 치유할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한스를 살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한스를 없애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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