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 (feat. 성찰록)

글을써보려는사람 2023. 10. 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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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

책무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40대 꼰대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비판하려는 목적보다는, 내가 늘 부끄럽지 않은 길을 택하며 살아가기를 원해서 써보는 것이다.

 

1.1.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으며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다. 법정 의무 교육으로 연간 3시간 이상 받도록 되어 있는 교육이다. 강사님은 연신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듯한 부분은 건너뛰거나 짧게 줄여 설명하느라 애를 쓰셨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시험 기간이고, 매년 받아온 의무 연수이기에 실은 별다를 것도 없어 참여하는 연수생들의 동기 수준이 높기를 기대하기는 실로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응급실 근무 경험과 관련지어 응급처치의 중요성을 설명한다거나, 가슴압박 실습을 할 때 강사님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강사님을 이기면 4세트, 강사님이 이기면 6세트, 가위바위보를 안 하고 그냥 하면 5세트를 진행하는 등 강사님이 지혜를 발휘하여 최대한 연수를 흥미롭게 구성하려 노력하신 점을 일단 칭찬해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잘못된 옆 선생님의 가슴압박 자세를 (연수 시간 지체를 우려하여) 충분히 교정해주지 않는다거나,

출처: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1041202180

혹은 인공호흡 시 입모양을 어설프게 가르치고 지나가는 등(인공호흡 대상자의 입술을 완전히 덮어야 하기 때문에 인공호흡 시 입 모양은 '후'가 아니고 '하'가 맞다. 그런데 강사님은 상세한 설명을 빼고 진행하셨다. 가르치는 기술이나 경험의 부족이 문제였던 것 같지는 않다) 상당히 중요한 내용에 대한 설명까지 생략하셨다.

이는 결과적으로 연수를 듣는 모든 선생님에게 오개념을 심어준 격이 되었는데, '일찍 끝내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성공적이고 효과적인 심폐소생술 교육이라는 제 1의 목표를 일부 저버리게 된 것이다. '후, 후' 불어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엉터리 인공호흡을 실제 현장에서 실시하게 될 일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는 다른 교과 혹은 업무 관련 연수에서도 왕왕 벌어지는 일이다. 국가의 돈으로 운영되며 반드시 해야만 하는 연수라면 제 몫을 다 하여 그만큼의 교육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완성도 높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사님들이 강의 시작에 앞서 연수생들의 호감을 얻고 몰입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으레 하는, 아주 전형적이고 판에 박힌 말은 '하루종일 수업 마치고 오시느라 피곤하실 테니 일찍 끝내겠습니다.'이다. 그러면서 계획되어 있는 토론 시간을 아예 없애버린다거나, 3시간짜리 연수를 2시간 혹은 1시간 반 만에 후려치는 등 더러 파행 운영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관행이 당연히 감사하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이상하게 여겨질 때도 많았다.

(하긴, 나도 강의 밑천이 떨어져버렸다거나 시각을 착각하여 30분에서 1시간가량 일찍 끝내버린 강의가 몇 차례 있기에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때마다 죄책감이 정말 심했다는 것을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해두고 싶다. -_-;;)

 

강의료를 받았으면 응당 그만큼에 상응하는 강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나 그것이 국가의 돈으로 운영되는, 또한 심폐소생술 교육과 같이 그 필요성이 지대한 연수라면 더더욱 충실히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짜배기 내용을 간략하게 전달하는 것과 중요한 내용을 빼버린 채 날림으로 운영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부실한 내용을 중언부언하여 정해진 시간을 채우는 것은 더 별로이긴 하다. (음. 생각할수록 필수 연수 부실 운영 등에 대한 생각은 비판이 아닌 심각한 자성모드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안 좋다고 비판한 사례가 나의 과거 이력에 모두 담겨 있다.)

 

 

 

 

 

 

 

1.2. 시험감독을 하며

고사를 치르는 데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여 일반 학생들에 비해 1.5배 시간을 주어 운영하는 고사실 시험감독을 했다. 그런데 학생이 3분가량 일찍 끝내서 답안지를 걷어 고사실을 걸어 나오다 보니, 어라 이게 아니다 싶었다. 혹시 학생이 1분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고치고 싶어진 답안이 생기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즉시 발길을 되돌려 들어갔고, 시간이 다 된 후 답안지를 들고 다시 나왔다.

수험생의 권익 보호를 위해 시험 감독으로서 감독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1.3. 학교장의 인사권 남용 사례를 전해 듣고

학교의 인사권자인 학교장은 연초 해당 연도의 부장교사 인선을 위해 인사자문위원회(약칭 인자위)라는 기구의 자문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관리자가 깜깜이 및 짬짬이(?)를 통해 부장 인선을 마쳐 놓고 인자위를 제대로 거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다가 문제가 되어 학교가 크게 혼란스러워진 일이 있다는 경험담을 동료 선생님께 전해 들었다.

물론 관리자도 사람이기에, 나름대로 함께 일하기 편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부장교사 인선에 앞서 인사자문위원회 조직을 거치도록 하는 것은 관리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등 부패하기 쉬운 조직 환경이 조성되는 일은 견제하기 위한 규정이다. 이러한 규정의 합목적성을 생각할 때, 아무리 부장교사를 선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무리 나와 마음이 맞지 않은 사람이 부장교사가 될 확률이 높아도, 거쳐야 할 단계는 분명히 거쳐야 하는 것이다.

 

 

 

 

 

 

 

2. 불필요한 관행을 최소화하는 것

그렇다고 정해져 있는 규칙이니 무조건 두말 말고 지켜야 한다는 것은 정말 아니다. 

 

2.1. 소규모 테마여행과 관련하여

세월호 사건 이후로 학년 전체가 같은 경로로 교육여행을 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최대 2~3개 반만 같은 경로로 여행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아주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하고, 또 학급별로 이동하다 보니 좀 더 의미 있고 오붓한 프로그램을 구성 및 운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 것 같기도 한데(후자는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논의할 지점이 제법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므로 넘어간다.) 생각해 보면 좀 많이 이상하다. 200명이 함께 여행 가면 안전 위험이 높고 50명이 가면 사고 발생률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확률이 높아지기 쉽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1~2인 교사보다 다수의 교사가 지혜를 모으고 협력하여 대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홀로 학급 학생들을 인솔하던 교사가 다치거나 (최근 이슈로는) 코로나에 감염되어 격리되어야 했던 것과 같은 상황은 불가능하고 무리한 상상이 전혀 아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으므로 교육 여행을 아예 금지한다거나, 혹은 소규모로 운영하도록 강제하게 된 것이 과연 적절한 방안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교육 여행의 취지와 의미를 살리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현장을 지원할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2.2. 시험지 보관

숙*여고 내신조작 사건 이후로 시험지 보관 등 성적관리 지침이 매우 엄격해졌다. 시험지를 포장할 때 휴대폰을 소지할 수 없고, 시험지 포장 및 보관 장소에 CCTV를 설치해야 하고 출입명부를 작성 및 관리해야 하는 등 고사 원안 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 좋다.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고사 종료 후 채점 기간에 교과 교사가 매일매일 퇴근하기 전에 시험 답안지를 고사본부에 제출하도록 한 것은 정말 이상하고 불편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교사의 성적 관리 관련 비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에는 당연히 마땅히 공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침은, 공정하고 정확도 높은 채점을 위해 퇴근 후 시험지를 싸들고 가서 채첨 하려는 일조차 규정 위반 행위로 만들어 버렸다. 서논술형 문항이 있는 교과의 시험이 고사 기간 후반부에 배치라도 되면, 교사는 채점을 할 물리적 시간이 없어지고, 이는 부정확한 평가로 이어지게 되거나, 혹은 교사로 하여금 서논술형과 같은 의미 있는 평가 자체를 포기해버리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야말로 이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워버리는 격이 아니냐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학생 답안 슬쩍 고쳐주려고 마음먹은 교사라면, 자택이 아니라 교무실에 앉아서도 충분히 성적조작 행위를 할 수 있다. 좀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정책 시행에 있어 유연성을 확보해야 하는 지점이다.

 

 

밤을 새기는 싫어서 학교의 불필요한 관행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써야 할 것 같다.

 

 

 

 

 

결론

 

요령을 피우는 것과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은 다르긴 하지만 분명히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이다. 책무성을 가지고 맡은 소임을 다하되, 과연 옳은 방향의 정책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통해 당위성과 합목적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일시적일지언정, 경미할지언정, 기계의 부품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모든 사고의 가장 근본에 흔들림 없이 굳건한 소명의식이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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