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명 인플루언서 마크 맨슨의 한국 탐방기 영상의 내용을 보며 정리한 내용에 제 생각과 고민을 덧붙여 작성한, 지난 글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가장 우울한 나라에서 회복을 고민하기 #1 (feat. 마크 맨슨,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를 여행하다) (tistory.com)
한국 사회의 주요 키워드 세 가지로 1)완벽주의 및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2)아무리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사회적 모순(Contradiction), 그리고 3)우울감(Depression)을 들었습니다.
마크 맨슨은 자살율 1위인 한국의 집단 우울 현상의 원인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
- Physical Health 신체 건강
- Stress 스트레스
- Social Isolation & Loneliness 사회적 고립 및 외로움
- Lack of Agency 삶에 대한 주체성 결여
- Shame 수치심
처음 세 요인은 만국 공통 요인이라고 말하며, 마크 맨슨은 영상에서 한국인의 정신 건강이 특히 취약한 이유는 뒤의 두 가지, 즉 유교문화가 가져온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 결여, 그리고 수치심 문화라고 소개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를 논할 때 신체 건강, 스트레스, 그리고 사회적 고립 및 외로움의 문제가 덜 중요하게 다뤄져도 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겠죠! 그러나 일단 오늘 글에서는 아래의 두 가지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3.1. 주체성의 결여
3.1.1. 개인은 없고 공동체만 있다
외국인인 마크 맨슨의 눈에 투영된 한국의 유교문화는 가족에 대해 헌신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절대적 헌신을 요구하며 개인은 존중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죠. 전체를 위해 개인의 필요나, 요구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왔다는 뜻입니다. 동생들 대학 보내느라고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했다는 한을 풀어내고 또 풀어내는 어르신의 얼굴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한편, 공동체보다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는 개인에 대해서는 가족 생각은 않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하고 산다는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고요. 그래서 직장을 선택하는 등 나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흠. 개인의 의견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내가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늘 옳은 결정이라거나, 늘 행복해지는 것은 또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3.1.2. 위계질서
개인의 헌신을 강요하는 문화와 더불어, 직장 문화가 개인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마크 맨슨은 분석을 이어갑니다.
예로 들면, 상사가 선호하는 메뉴가 곧 나의 점심 메뉴가 되고,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퇴근할 수 없고, 상사가 기분 나쁜 일 있으면 그 날 회식에서는 슬픈 사람이 되어 의기소침한 기분을 연기해야만 한다는 것이죠.
이런 조직 문화는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계속 개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상호 존중해주는 문화가 자리잡도록 노력해가야겠죠.
한편, 마크 맨슨은 우울증이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공감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여기는 대신 품성의 결여, 혹은 태도의 문제라고 보며, 가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적절하게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좀 더 열심히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고 뭐하니,
우울한 게 아니고 게으른 거야,
정신과라니 남 보기 부끄러워서 어떻게 하니,
하는 언어화된, 혹은 비언어적인 메시지들이 개인의 정신을 더욱 병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3.2. 수치 주는 문화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수치심 및 창피함을 느끼도록 하는 문화여서 한국인들은 더 우울하다고 합니다.
창피함은 일반적으로 트라우마, 학대, 왕따 등의 극한 경험을 겪었을 때 느끼는 감정 및 정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수치스럽게 여기는 문화가 깊이 자리잡았다는 설명입니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체면을 무엇보다 중시하게 된 결과이지요.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곧 개인의 가치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학생들 상담을 하면서,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잘 모른다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아이들이 부모의 직업을 부끄러워 하고 있었던 것인 듯합니다.
아니면 부모님이 부끄러워 아이에게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요,
슬프네요.
게다가 더욱 더 심각한 문제는, 개인의 실패가 곧 공동체 전체의 실패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즉, 1등을 못하거나, 좋은 대학 못 가거나, 돈을 잘 벌지 못하는 상황이 그냥 개인의 실패가 아닌, 가문의 수치가 된다는 것이지요. 완벽할 수 없고, 때론 넘어져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가뜩이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지난 글 초반에 논의했던) 완벽주의 문화를 지녔기에, 실패로 인한 좌절을 아주 자주 느끼게 되죠. 이러한 빈번한 개인적 좌절감에 더하여, 온 공동체가 나의 실수로 인한 부끄러움을 감당하게 될 것까지도 염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참 살기 힘들다, 그쵸.
마크맨슨은 이렇게 극대화된 우울감을 원인을 수치심 문화와 자본주의의 이상한 결합이라고 설명합니다.
워낙에 자본주의는
1) materialism(물질만능주의)와 f**k you money(빌어먹을 돈에 대한 숭상)
2) self-expression(자기 표현) 및 individualism(개인주의)
로 대변되는데,
한국 특유의 공동체를 중시하는 체면 문화로 인해, 자본주의의 긍정적 측면인 2) self-expression(자기 표현) 및 individualism(개인주의)는 사라지고, 1) materialism(물질만능주의)와 f**k you money(빌어먹을 돈에 대한 숭상)만 남아서 완벽주의, 혹은 능력주의 현상만을 남겨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동기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젊은 층이 즐거움과 쾌락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도파밍' 문화도,
우리의 이런 괴로움을 고스란히, 혹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회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해 조금은 더 너그러워지고, 또 개인이 조금 더 소중해지는 따뜻한 문화가, 한국에 자리잡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한편 서구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너무 귀하게 자라' 나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건강한 개인주의가 아니라고 해요. 내가 소중한만큼 남 소중한 줄도 아는 문화를, 우리 함께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한국의 회복탄력성에 대해 고민하는 글은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https://youtu.be/JCnvVaXEh3Y?si=G5LzVLWFSjks3Y5Q
교육을 고민하다 #1 - 수치심과 교육 (tistory.com)
교육을 고민하다 #2 - 수치심과 교육, 그리고 AI 활용에 대한 고민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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