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이의 수치심의 부재
행사를 시작하는 시각이 가까워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한 인파가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한 차례 사람들이 올라가고, 줄이 조금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나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멋지게 차려입은 어떤 사람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오더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차례차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지만, 지하주차장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인파들로 한두 명 겨우 타려다 단념하고 내리는 사이를 아까 그 멋진 분이 비집고 들어가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줄을 서있던 사람들과는 눈을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속으로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다.
그 우아하고 수려한 외양이 정말 아까웠다.
(나는 아무래도 새치기에 대한 억하심정이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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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도, 수치심에 대해,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수치심과 교육에 생각해 보려 한다.
2. 수치심과 교육
2.1. 수치심을 알려준다는 것
다음은 장 클로드 볼로뉴가 <로베르 사전(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에서 발췌했다는 수치심의 정의이다.
- 성적 행위를 행하거나 생각하거나 목격하게 될 때 인간이 느끼는 부끄러움, 곤혹감; 그런 감정을 느끼는 지속적 성향
- 자신의 품위가 금기시한다고 여겨지는 것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곤혹감
수치심은 옳고 그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등에 대한 가치나 적절성에 대한 판단과 관련이 있기에 사회 및 공동체 질서 유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엘리베이터나 화장실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이를 무시하고 앞으로 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등 사회 규범을 알려주는 것은 명백히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고, 이는 분명한 교육의 범주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규범을 내면화하면, 교육[사회화]의 결과, 잘못된[되었다고 판단하는]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개인은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게 된다.
2.2. 수치심을 유발하는 교육
그런가 하면, 사회 운동, 정부 정책, 기업의 캠페인이나 방침 등 수치 주기 전략을 통해 사회 변화나 개혁을 이끌어내기도 한단다. 무엇이 부끄러운 행위인지를 알려줌으로써 특정 개인 및 집단의 행동을 교정하려는 의도이고, 이러한 시도의 순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투기하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고, 혐오 발언이 품위 없는 행동임을 아는 것은 중요하니까, "다들 기다리는 것 안 보이시나요?" 하고 수치심을 일깨워주는 말을 했더라면, 엘리베이터 앞의 우아한 이는 마지못해 줄을 섰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수치심을 일깨워주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은 일정 부분 교육적[계도적] 효과가 있는지도 모른다.
2.3. 수치심 유발의 (역)효과
그런데 내면화되지 않은 상태의(자기 파괴적인, 따라서 치유가 필요한 종류의 '내면화된 수치심'은 여기에서 다루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강제로 촉발된 수치심이 과연 '일정 부분 장려해도 될'만큼 긍정적일까?
다음은 개인에게 과도한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로 규정되어, 현재 교육 현장에서는 금기시되는 행위들이다.
- 수업 방해 행위를 한 학생을 교실 뒤로 가서 서 있게 하는 것
- 행동 문제를 보이는 학생에게 가정교육이나 개인 신상을 들먹이며 모욕감을 주는 것
- 학업 성적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게시하거나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
수치심을 품을 만한 일에 수치심을 품지 않는 품행 장애를 지닌 학생일지언정, 수치를 주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전제된 결과이다. 수치심은 인권 혹은 개인의 명예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부모가 자녀에게 (나이가 더 어린) 형제자매와 외모나 성격, 학업능력이나 행동에 대해 비교하는 말을 한다거나,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등 개인이 개인에게, 혹은 개인이 집단에, 집단이 개인에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다양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수치심은 기본적으로 윤리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수치심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3. 결론
3.1. 수치심을 일깨워주는 것은 교육의 범주에 해당된다.
3.2. 수치심 유발을 통해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등 수치심을 의도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3.3.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은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수치심과 교육은 아주 가까운 개념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치심을 활용하는 교육에 대해서는 그 영향 및 효과에 대한 고찰과 함께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다음 글 예고)
가치교육을 고민하다 #2 - 수치심과 교육, 그리고 ChatGPT 활용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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