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초사회
지하철 최단 거리인 24번 코스로 가야 하니까 3번에서 내려야 바로 계단으로 연결되고, 환승하러 뛰어가면 바로 15분 도착하는 지하철 탈 수 있으니까 운동화 끈을 단디 매야겠지? 딱히 정해진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무조건 1분이라도 빨리 가고 싶다.
김난도 외 <트렌트 코리아 2024>에 나온, 분초사회의 생활상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강유미 씨의 영상 속 대사라고 한다. 정말 그렇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멀리 도달하고 쟁취하고 끌어모으고 싶어 하는 우리들의 모습, 또 언젠가부터 나의 모습이 된 그 어떤 것이다.
분주하고 바쁘고 정신 없는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나마 방학이자 설연휴를 즐기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런 말은 차라리 엄살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2. 안단테, 혹은 아날로그
나는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지하철을 타면 창밖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것을 좋아하노라고, 나를 설명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나의 걸음의 속도에 따라 길바닥의 균열을, 그 사이를 비집고 피어난 풀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쇼윈도에 가고 싶어 한 데는 햇빛이나 선택받을 가능성과 무관한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아야겠다. 대부분의 에이에프나 로사와 다르게 나는 늘 바깥세상을 아주 세세하게 보고 싶었다. (중략) RPO 빌딩이 벽돌로 뒤덮여 있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흰색이 아니라 연노란색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고(22층이었다.) 창문 아래마다 창턱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해가 RPO 빌딩 전면에 대각선으로 빛을 드리워 한쪽 면에는 거의 하얗게 빛나는 삼각형이 생기고 다른 면에는 아주 짙은 색 삼각형이 생기는 것도 보았다. 두 면 다 원래는 연노란색인데도. 또 건물 창문이...
-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인간과 마찬가지로 느끼고 생각하고 학습하는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의 서사이다. 나는 신문을 펴 놓은 채로 유튜브를 듣고,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면서 빨래를 개고 밥솥에 불을 올리느라 수도 없이 일어나곤 하는 동안... 멈추고, 생각하고, 관찰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그야말로 인공지능은 나보다 더 '인간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사색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판단하고, 통찰하고,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아날로그 역량, 혹은 인문학적 문해력이 더 중요하다는 전문가의 일침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3. 허구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 <그녀>의 트레일러 영상에 등록된 댓글이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공상의 산물이라기보다 현실 상황을 그려낸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 판단한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사람보다도 사람을 더 잘 이해해주고 존중해 주는 로봇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을 누가 괴상하다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4.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아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인간의 존귀함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이런 내가, 나와 타인의 존엄성을 교육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나 있을까?
고민이 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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