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 독서일기 #3 - 슬픔이 안전을 낳다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6. 7. 23:07
728x90

 
 
 
펄롱은 출생이 고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곳에서 태어나 성장한다.
 

  • p.15 펄롱 엄마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가족들은 외면하고 등을 돌렸지만 미시즈 윌슨은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계속 그 집에 지내며 일할 수 있게 해줬다.
  • p.16 펄롱은 유아기를 주로 미시즈 윌슨 집 부엌에 있는 요람 안에서 보냈고 다음에는 커다란 유아차의 안전띠에 매인 채 수납장 옆, 길쭉한 파란 주전자에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지냈다. 펄롱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커다란 서빙용 접시와 시커먼 레인지뜨거워! 뜨거워!―그리고 두 가지 색 정사각형 타일로 덮인 반들거리는 부엌 바닥이었다.

 
파란 주전자며 시커먼 레인지에 손을 뻗을 때마다 옆에서는 뜨거워! 뜨거워! 하고 어린 펄롱을 보호하기 위해 소리쳤을 것이고, 이것은 펄롱의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 p.17 학교에서 펄롱은 비웃음과 놀림을 당했다. 외투 뒤쪽이 침 범벅이 되어 집에 돌아온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큰 집에서 자란 덕에 애들이 조금 봐주는 것도 없지 않았다.

 
혼외자의 신분으로 아이들의 멸시의 대상이 되곤 했으나, 큰 저택에 산다는 것이 펄롱의 방패막이 되어주기도 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수녀원에 감금되어 학대를 당하다가 심지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는 펄롱과 그의 어머니를, 미시즈 윌슨은 안전하게 보호해 주며, 한결같이 존중해 준다.
 

  • p.93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으셨지." 네드가 말했다. "너에 대해 함부로 말한 적도 없고, 네 엄마를 심하게 부리지도 않았어. 급료는 적었지만 그래도 여기 우리 머리 위에 제대로 된 지붕이 있었고 굶주리며 잠자리에 든 적은 단 하루도 없으니까.

 
 
 
나의 오늘 궁금증은, 과연 어떤 환경과 경험들이 미시즈 윌슨으로 하여금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심을 지니게 했는가인데, 이에 대한 나의 추측은 미시즈 윌슨이 흘려온 눈물의 세월이다.
 

  • p.16 펄롱이 자라자, 자식이 없는 미시즈 윌슨이 펄롱을 돌보며 잔심부름도 시키고 글도 가르쳐주었다. 미시즈 윌슨은 작은 서재를 갖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으며 전사한 남편의 유족 연금과 헤리퍼드종 소와 체비엇 양 몇 마리를 잘 키워 얻는 수입으로 소박하게 살았다.

 
 

첫째, 미시즈 윌슨은 자식이 없었다.

(어제 글에서 미시즈 윌슨의 자녀에 대한 언급은 정정해야 함을 오늘 깨달았다.)
다음 지문에서 살펴보면, 뒤를 이을 남자아이를 낳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p.76 "그렇긴 해도 섭섭하겠지요."
수녀원장은 펄롱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섭섭하다고요?" 펄롱이 물었다. "어떤 게요?"
"이름을 이어갈 아들이 없다는 거요."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의 사람조차 대를 이을 자식 걱정을 하도록 요구받는 사회 분위기라면, 잘 사는 집 아낙이 자녀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수치일지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 p.93 네드는 늘 그러듯 펄롱을 반갑게 맞았고 곧 펄롱이 갓난아기 시절 이 집에 왔을 때 일을 회상하기 시작하더니 미시즈 윌슨이 날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요람 속 아기를 들여다보곤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얻을 수 없었던, 부엌 일 하는 일꾼의 자녀를 바라보며 필시 그녀는 자신의 아픔도 떠올렸을 터인데, 그녀의 아픔은 질투와 분노가 아닌, 힘없고 연약한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번진다.
 
 
 

둘째, 미시즈 윌슨은 남편이 없었다.

 
게다가 전장에서 남편을 잃고 미시즈 윌슨은 하루아침에 과부가 되었으며, 유족 연금으로는 부족하여 가축을 기르며 수입을 얻어야 했다. 마침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를,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소리 죽여 울고, 사람들의 무신경한 말들에 아파하면서도 그녀는, 자기 한 몸 건사하기 위해 일꾼들을 해고하는 대신 식솔들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선택하며, 행실이 단정하지 않은 일꾼을 위해 (온갖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모자 보호소가 아닌) 진정한 보호의 손길을 제공하는 선택을 한다.
 
 
 
 
 
 
 
저마다의 슬픔이 어떤 아름다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키건과 함께 기대하며 소망하면 좋겠다.
 
 
 
그나저나, 눅눅하고 삐걱거리는 호텔 침대에서 잠을 못 이루던 가운데, 딸 아이가 잠결에 한 말이 기가 막혔다.
 

존재를 가운데에 두는 거야.

 
 
 
아이야, 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그런데 네 삶에 아픔이 너무 많이 꽃피우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