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가슴이 뛴다.
설레어서라기보다 무리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하지만 과연 무슨 일을 덜어낼 수 있었을까, 싶다.
숙제로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을 몇 자 읽었는데, 웃기는 농담도 논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여겨졌다.
- p.25 지구에 사는 것이 고된 일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지구에 살기만 하면 해마다 한 번씩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무임승차권을 얻게 된다.
이런 관조적이고 해학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무게가 다소 가벼워질 수 있겠지.
나만의 농담에 기반한 논증(...이라고 부르기 거창하다면 그저 이를 패러디한 나만의 농담)을 시도해 보자.
- 지구에 사는 것이 고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천국 소망을 더욱 품을 수 있게 된다.
- 지구에 사는 것이 고된 일일 수도 있지만, 하늘로 지금 당장 즉시 바로 지금 불려가는 것보다는 낫다.
- 지구에 사는 것이 고된 일일 수도 있지만, 기후위기, 핵전쟁, 인공지능 등이 고된 시간들을 아주 빨리 줄여주고 있으니 괜찮다.
- 지구에 사는 것이 고된 일일 수도 있지만, ...
다음은 <모비딕>에서 발견한 농담이다.
p.269 아무튼 선장이 매우 신중하고 과학적이며 <나침반 함의 편차>니 <방위 나침 관측>이니 <근사 오차> 같은 유식한 용어를 사용하며 해박한 지식을 보여 주긴 했어도, 심오한 나침반 자석의 탐구보다는 까마귀 둥지 한쪽으로 손이 닿기 쉬운 곳에 잘 보관해 둔 술병에 더 마음을 뺴앗겼던 건 진눈깨비 선장 자신도 잘 알았다. 대체로 나는 이 용감하고 솔직하고 똑똑한 선장을 무척 존경하며, 더 나아가 사랑하지만, 손에는 벙어리장갑을 끼고 머리에는 방한모를 덮어쓴 채 북극이 멀지 않은 그 높은 새 둥지에서 수학을 탐구하는 동안 충실한 친구이자 위로가 됐을 게 분명한 술병에 대한 언급을 철저히 배제한 건 매우 온당치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나의 또 다른 농담이다.
수업 중 친구에게 욕설을 한 것으로 인해 지도받으러 왔던 학생이 보인 태도에 언성을 높였는데, 학생이 교무실에 다시 찾아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참으로 너무나 다행스럽게 여겼던 것은, 성공적 생활 지도에 대한 교육자로서의 자긍심이라기보다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을지 모를 민원이나 법적 대응에 대한 불안감의 해소로 인한 안도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에 사는 것이 고된 일일 수도 있지만, 나 스스로의 모습이 솔찬히 우스운 나머지 즐거워하며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허허 참.
선들선들 바람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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