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체를 조롱하고 딴청 하느라 배움이 일어나기 힘든, 안전하지 않은 모 학급에 대해 피력한 일전의 글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안전한 교실 만들기 - https://hn47749.tistory.com/m/270
안전한 교실 만들기
어느 학급에서 안전하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였습니다. 영어의사소통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학생들이 소리 내어 영어 문장을 읽을 때, 뒤에서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거든요. 처음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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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흥미로운, 아니 슬프게도 저의 예감이 들어맞는 일이 있었습니다. 해당 학급의 전반적인 말하기 평가 성적이 많이 낮더라고요.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서 점수를 낮게 주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수업 짝꿍 선생님과 함께 상의해 가며 채점을 했거든요.
제가 관찰한 (흥미롭다는 말은 자제하겠습니다. 저는 진지하고 슬픈 상태이거든요.) 사실은, 제법 영어의사소통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하나같이 지나치게 긴장하여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해당 학생들이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해당 학급에서 착하고 성실하며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학생들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쫀심 상하게시리 선생님의 말을 경청하는 찐따 같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곳이지요. 수업을 하나도 안 듣는 것 같은데 정답은 척척 발표할 수 있는 반항적 천재 모드를 동경하며,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이나 지시사항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시사항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이행할 수는 더더욱 없지요. 안 들었으니까요. 다른 학생이 발표하는 중에 이야기를 하면 점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삼가 달라는 말을 한 시간 동안 열 번 이상 반복해야 했고, 학습지 1에서 5까지만 검사하고 6부터는 검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다섯 번도 넘게 반복해야 했습니다.(저는 지금 짜증을 내고 있군요.)
게다가 누군가를 비웃을 수 있으려면, 자신은 상대에 비해 우월하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정작 자신 또한 완벽하지 않음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항이 있습니다.
첫째, 실력이 뽀록날 기회를 회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친구들을 노골적으로 비웃던 어떤 학생은 자신의 (생각보다) 보잘것없는 에세이를 찐따처럼 진중한 태도로 발표하기보다는, 껄렁껄렁한 자세로 대체 과제를 선택하더군요. 그리고 못 이기는 척 앞에 나와서는 손을 벌벌 떠는 모습을 감추느라 영어 발음과 억양에는 더욱 신경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다른 어떤 학생은 그럴듯한 억양을 구사하는 모범생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차라리 시크하게 래퍼만큼 빠른 속도로 웅얼거리며 말소리와 점수를 갉아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둘째, 정말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파워 당당하게 보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긴장합니다. 긴장하여 떨리는 자신의 음성으로 인해, 학생의 자의식과 긴장도는 더욱 높아집니다. 어젯밤 아주 유창하게 외워서 말할 수 있었던 부분이 오늘따라 막히고 꼬이고 버벅거립니다. 바보같은 모습으로 보여질까봐 불안해서 집중을 할 수 없고, 과업에 온전히 집중을 하지 못하니 성과가 좋아질 수가 없는 것이지요.
잘하든 못하든 더 잘해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의 다른 학급 학생들은, 대체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들을 받는데 말이죠......
평가가 끝난 후, 5초 정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윽고 이야기했습니다. 타인의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잘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누구를 비난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안타깝다고 말입니다.
귀중한 아이들의 성장통이 너무 심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밤입니다.
평안한 밤과 기쁜 새 날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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