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다가 무심코 문가 천장에 시선이 머물렀다. 제법 큰 벌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리고 있었고, 벌의 오분의 일 크기 정도 되어 보이는 거미가 벌을 껴안듯 붙어 있었다.(<샬롯의 거미줄>에서 읽은 내용과 그 이후에 벌어진 상황을 종합해 보니, 아마도 벌을 마비시키는 중이었던 것 같다.) 이윽고 거미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벌의 무게를 지탱하던 거미줄 중 일부가 끊어진 모양인지 별안간 벌이 아래쪽으로 툭 내려왔다. 거미가 다시 위쪽의 거미줄 중심부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더니--아마도 위에서 연결되어 벌의 몸에 연결되어 있는 줄을 찾으려는 시도 같았다--벌 주위를 돌아 다시 올라가는데, 벌의 몸체도 함께 조금 들려 올라갔다. (이쯤에서 나는 화장실에 들어간 목적은 거의 잊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거미가 움직일 때마다 벌의 몸체도 조금씩 조금씩 거미줄의 중심부를 향해 들려졌다. 몸을 한껏 움츠리기도 했다가, 다리를 이따금씩 움직이던 벌의 시도는 어느샌가 없어졌다. 움직일 때마다 거미줄이 조여 왔던 것인지, 벌의 앞다리는 수갑이 채워진 손처럼 꽁꽁 묶여 있었다.
거미는 저 위에 보이는 알들을 낳느라 잃은 기력을 보충했을 것이다.
급히 휴대폰을 찾으며 말씀드린 관찰기를 들은 아버지께서 지체없이 빗자루를 가져와 ‘가뜩이나 사라지고 있는 벌을 자꾸 죽게 만드는’ 거미줄을 쓸어버리지 않으셨다면,
낮에 (커피숍이라기보다는) 찻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에서 잘 가꿔졌지만 뭔가 아름답지 않게 느껴지던 정원을 바라볼 때의 기분이 다시금 떠올랐다.
참깨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쇠뜨기며 이름모를 풀들을 열심히 뽑던 늦은 오후 내 모습도 생각난다.
공존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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