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에드워드 호퍼와 쓰기 교육

글을써보려는사람 2023. 8. 1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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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에서 8월 20일까지 에드워드 호퍼전이 열리고 있답니다.

지난번 월요일 휴관 사실을 간과하고 허탕을 한 차례 친 후 두 번째 도전이었어요. 이번엔 관람에 성공! 했답니다.

 






 
자고로 미술관은 혼자 가야 제맛이죠. 내가 감상하고 싶은 그림 앞에 마음껏 머물러 있을 수 있으니까요. <탕자의 귀향>을 집필한 헨리 나우웬은 이틀 동안 아예 의자를 가져다 놓고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감상했다고 하지요.
 
저는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감상하며 제 인생과, 그리고 쓰기 교육에 대해 골똘히 탐구해 보았어요. 다음은 쓰기 교육 위주로 느낀 생각들을 정리해 본 내용이에요.
 
 
 
 
 
 
 

1. 습작

에드워드 호퍼는 초년 시절부터 손과 모자를 계속해서 그렸더라고요. 손을 그린 호퍼를 보며, 저는 제 고등학교 미술 시간이 떠올랐어요. 저는 손이 워낙 크고 못생겼거든요. 하루는, 자유 주제 그리기 시간에 마귀의 손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던 제 손을 그렸어요. 왜 그랬을까. 손으로 인해 응어리진 마음을 그림을 통해 분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당혹스러워하시는 미술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그냥 그 그림은 버리고 다른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요. 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호퍼는 왜 손을 그리게 되었을까, 잠시 궁금하더라고요. 호퍼는 손이 예쁘던데ㅎ 아무튼, 자신의 손의 다양한 형태를 관찰하고 또 관찰하며 호퍼는 표현력을 기른 것이지요. 화가로서 내공을 쌓았달까요.
 
화가로서 원숙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호퍼는 하나의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해 같은 풍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스케치를 했더라고요. 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적어도 네다섯 점의 습작을 거쳐 가장 맘에 드는 구도를 포착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것은 글을 쓸 때에도, 쓰기 수업을 진행할 준비를 할 때에도, 또한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을 쓰도록 할 때에도 해당되는 말이에요.
 

1.1 내가 글을 쓸 때

저만 해도, 계속 이 주제, 저 주제를 가지고 글쓰기를 해보니 글을 쓴다는 활동 자체에 익숙해지고, 글을 조금은 더 잘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쓸 글의 주제와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도 조금씩 조금씩 능숙해지는 것 같고요. 아직 제 자신이 글을 너무 못 써서 별로 덧붙일 말이 없네요.ㅎㅎ
 

1.2 쓰기 수업을 준비할 때

내가 글을 쓰며 거친 사고의 과정을 학생들도 잘 거치게 할 수 있도록, 학습지를 잘 만들어야 해요. 저는 2016년부터 프로젝트 수업을 시도하며 쓰기 수업을 조금씩 발전시켜 왔어요. 학생들이 연구보고서를 쓸 수 있도록 다양한 디딤돌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주나 마나 한 디딤돌은 솎아내고 더 필요한 디딤돌을 놔주느라 저는 학습지 초안을 고치고 또 고쳐왔고, 배우고 또 배워왔죠. 그리고 이 과정이 자양분이 되어 현재 제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에세이 작성 지도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지난주 제 피드백 제공 사투 경험에서도 보셨듯, 쌓아야 할 내공과 넘어야 할 산들이 아직 많긴 해요.
 

1.3 학생들로 하여금 쓰도록 할 때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한 편의 글을 써보는 경험을 하기 전에, 문장 단위의 작문, 단락 글쓰기 등을 경험하며 글쓰기에 대한 효능감을 조금씩 느낄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해요. 문형에 대한 이해, 문단에 대한 이해, 에세이에 대한 이해를 차츰 하도록 하는 거죠.
그런데, 쓰는 양을 너무 작은 단위로만 살금살금 늘려가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학습의 과정은 비선형적이어서, 문장 구성 능력을 완벽히 익혀야만 에세이의 구조를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작은 나무를 그리는 연습을 하다가 숲도 한 번 그려보고, 또 돌아와 나뭇잎을 더 정교하게 묘사하는 법을 연습했다가, 하는 거죠. 그러는 동안 학생들의 작문 실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될 거예요.

 

 
 
 

2. 메모

일단 생각을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쓸 때는, 마구잡이로 메모해 보는브레인스토밍 단계를 거쳐야 해요.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에 떠오른 원석들을 주머니에 챙겨놔야, 잘 다듬고 꿰어 보석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호퍼도 그랬더라고요.
 
그림을 보는데 뭐라 뭐라 글씨가 빼곡히 적혀있지 않겠어요? 처음에는 무슨 편지인가, 싶었는데요. 가까이 가서 보니 아주아주 다양한 색깔의 이름들이었어요. 저도 호퍼의 메모를 소책자에 메모해 왔어요. pale greygreen, dull white, warm white, yellowish, pale orange, pink orange, grey yello, white lavender, yellow lavender, cold $#%&^(알아볼 수 없었던 필기체ㅎㅎ), 등등등.... 당시에는 디지털카메라가 없었으니까, 현장에서 본 그 느낌과 색감을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머리와 가슴에 담아두기 위해 스케치에 빼곡히 필기체로 메모를 해놓은 것이겠지요.
 
 

&amp;lt;황혼의 셰익스피어&amp;gt;를 위한 습작, 1935,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위는 호퍼의 습작 중 하나인데요, 실제 전시된 작품은 왼쪽에 볼펜자국으로 그린 것과 같은 모양이었어요. 호퍼는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이 장면을 그려야겠다, 마음먹고 종이를 북~ 찢어 슥삭슥삭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르지요. (책자에 실린 도판에 대한 저작권이 저작권자와 서울시립미술관에 있다고 해서 모자이크 처리를 하였어요.^^;;)
 

 
 
 
 
 
 

3. 관찰


들여다보아야 보여요. 느껴지고요.

사진 출처: https://magazine.brique.co/brq-news/seoulmuseumofart_edward-hopper/


<오전 7시>라는 작품은 제목부터 호퍼의 관찰 습관을 보여주지요. 해가 뜨는 시각에, 해가 중천에 머무르는 시각에, 해 질 녘에, 야심한 시각에 집을 보고 또 보면서 빛의 밝기와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를 얼마나 세심하게 관찰했겠어요! 그리고 어느 날 호퍼는 생각했겠죠, ‘그래, 오전 7시의 집을 그려야겠어.’라고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쓰기 수업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작년 서평 에세이 쓰기 수업을 진행했는데요, 학생들이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도록 도우려면 제 자신이 좋은 서평이 어떻게 생긴 글인지를 알아야 하기에, 논문 중심으로 서평을 여러 편 읽으며 서평의 좋은 예를 관찰했었어요. 그랬더니 좋은 서평에 대한 감이 생기더라고요.

올해는 성찰적 에세이 쓰기를 하느라 자문화기술지 관련 논문😊을 읽고, 올케가 수강한 상담심리 수업 과제 안내문을 참조하기도 했어요.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과 관련한 사회문화 현상을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도록 돕고, 적절한 평가루브릭을 개발해서 깊이 있게 탐구해야만 하는 학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요.
 
 
 
 
 
 
 
 

4. 글을 다듬기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랫말처럼, 지우개를 많이 쓸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해요.
 
개요 작성 단계에서 동료 평가 및 자기 평가를 통해 글의 구조 및 내용적 측면 들여다보게 한 후 교사 피드백을 받도록 하면 글의 뼈대는 철근처럼 아주아주 단단해질 거예요. (순살집 노노ㅠㅜ) 그런 후에 영작을 시작하는 거죠. 실은 시간에 쫓겨 동료 평가와 자기 평가 단계를 제대로 밟지 못했더니 교사 피드백을 제공할 때 엄청나게 애를 먹었어요. 학생들이 비슷한 실수를 많이들 해서 저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에 반복을 거쳐야 했거든요. 하다 하다 안 되어서 나중에는 전체 학급을 대상으로 공통 피드백을 줬지만, 그렇게 하면 피드백 내용을 자신의 글쓰기에 적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제법 많더라고요. 개별피드백이 확실이 효과적인데, 교사의 수고를 덜기 위해 개요에 대한 동료피드백을 먼저 거치도록 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브레인스토밍 단계, 개요 작성을 거쳐 오늘(6/19 현재) 최종원고를 쓰게 하기 시작했는데요, 역시나 수행평가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다 보니 최종 원고를 여러 차시에 걸쳐 수정하도록 하는 시간을 부여하지 못했어요. 학생들도 참 아쉬워했어요.
 
2학기에는 뼈대를 잘 세우고, 충분히 다듬을 수 있도록 시간을 잘 확보해 주어야겠어요.
 
 
 
 
 

 

5. 결론

습작과 메모, 관찰과 다듬기의 과정은 호퍼에게도, 글 쓰는 사람에게도 필요해요. 호퍼의 전시는 글을 써보려는 사람이자 글쓰기를 잘 가르치게 되고 싶은 제게 아주 많은 영감을 주었지요.
 
여러분도 며칠 남지 않은 에드워드 호퍼전에 한 번 가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마침 내일은 주말이고 다음 주 화요일은 광복절 휴일이네요!
 
기쁘고 보람찬 오후와 저녁시간 보내시기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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