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것은 좋은 것이에요. 친절함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너무 팍팍해지니까요.
하지만 지나친 친절함은 때로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어느 선생님께서 만드신 학습지를 제 수업 시간에 활용하려고 가공하고 있는데, 교과서 속 모든 정보가 너무 친절하고 상세하게 가공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스스로 정보를 처리하고, 유목화해보고, 확장된 사고를 경험해 볼 틈이 없겠더라고요.
너무 많이 갈아서 섬유소가 죄다 파괴되어 버린 과일주스 같달까요? 친절함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인 것이죠.
그래서 저는 오늘은 친절함이 해로울 수 있는 순간에 대해 포스팅을 써보려고 해요.
첫째, 학생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은 친절함이 아니다
아이들은 단 음식을 좋아하죠. 하지만 아이들이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쵸컬릿, 과자, 음료만을 끼니 대신 주는 것은 아동 학대이지, 아이를 위하는 길이 아니지요.
교사로서 학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조퇴 할게요, 조금 늦게 제출했지만 지각 체크 하지 말아 주세요, (답안이 불완전하지만 혹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도 없고) 저 점수 더 주세요,...
학생들은 많은 요구를 해요.
조퇴해야만 하는 순간도 당연히 있죠. 하지만 학교에 있기 싫어도 조금은 인내해 보려는 마음이 없는 상태여서 조퇴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요. 학업에 관심도 없는데 오죽 힘들까, 싶어 몇 번은 모르는 척 조퇴를 시켜줄 때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조퇴하는[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싫으면 박차고 나가버리면 그만인] 것이 습관이 혹은 생활 태도가 되는 것은 곤란할 것 같지요. 조퇴 잘 시켜주는 친절한 담임 선생님은 어쩌면 학생을 지도할 여력이 없는 상태의 선생님인지도 몰라요. (많은 순간 제 모습들이기도 해요.)
게다가 지각 체크와, 점수 부여는 형평성 및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문제이잖아요. 친절함과 '판단력의 흐려짐'을 우리는 혼동해서는 안 되겠죠.
둘째, 지나치게 친절한 학습지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친절함이 아니다
우리, yes or no 혹은 단어 단위의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면 되는 내용으로 가득한 학습지는 만들지 말기로 해요. 혹은 그런 방식으로 점철된 의사소통은 하지 말기로 해요.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표현해보고, 다른 친구의 방식과 비교해 보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인지적 능력이 향상되니까요.
이런 학습지 어떤가요?
지나치게 불친절한가요? ^^;
솔직히 이걸 100장 인쇄하려니 나무에게 미안하긴 하네요. 그냥 백지 연습장 꺼내서 해보라고 해도 될 것 같긴 해요.ㅎㅎ
확실히 좀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요. 그렇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이런 흰 도화지가, 학생들에게[그리고 우리 인생에] 정말 필요한지도 몰라요.
상위개념도 뽑아보고, 하위개념도 나열해 보고, 논리적 흐름 및 관계도도 그려보고 하면서 학생들의 뇌는 엄청나게 활성화될 걸요?
물론, 영어 의사소통능력이 높지 않은 학습자라면 디딤돌을 더 놔줘야 하기에 다음과 같은 학습지를 주는 것도 필요하죠. 실제로 수업 진행을 훨씬 수월하게 해주기도 하고요.
학생 수준이나 성향에 따른 개별화 학습을 위해, 위의 두 종류의 학습지를 주고 선호에 따라 골라서 가져가도록 서로 다른 버전을 만들어 보긴 했어요.
하지만 백지의 위력, 공책 사용의 중요성을 학습자들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교육자가 아니시더라도 독서를 하시다가, 유튜브 강의를 듣다가 위에서 소개해드린 방식대로 백지 메모를 시도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는 훨씬 더 오래도록 필요한 정보를 보유하게 되고, 그것이 나만의 지식이 될 확률이 높아질 거예요.
장기적 훈련을 통한 인지기능 활성화는 덤이겠지요! +_+
셋째,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친절함이 아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해 우리는 일러줘야 할 필요가 있어요. 식사 시간 전후에, 새벽 이른 시각이나 밤늦은 시각에 전화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님을 우리는 초등학교 1학년 바른생활(음 지금은 없어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교과인 것 같죠? ㅎㅎ)에서 배웠잖아요.
무슨 말만 하면 아동학대라고 몰아붙이는 환경이라면,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 지도하면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뿐만 아니라 신변의 위협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라면 (특히 교권 침해가 화두가 되는 요즘에는 더더욱) 이런 말은 아무에게도 힘을 실어주거나 지지받지 못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방임하고 될 대로 되도록 내버려 두게 되는 것은 속상해요.
그래서 우리가 어른으로서, 누군가의 멘토나 로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런 배움들을 통해 자신이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한 것을 아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음. 이 지점에 대해서는 좀 더 논리적이고 설득적인 근거를 생각해 봐야겠어요. 가르치는 자의 태도 등 고려해야 할 이슈가 제법 많은 듯해서요.
글을 맺으며
지나친 친절함은 학생들의 자생력, 독립심, 자기 주도성 혹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을 빼앗아갈 수 있어요. '덜 친절하다는 것'과 '존중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또한 '사상이나 생각을 주입하는 것'과 '올바른 길을 가도록 가르치는 것'을 역시 혼동해서는 안 되겠지요. 교사는 학생들이 독립적이고 건강한 성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존재니까요.
무엇보다, 이제부터는 너무 퍼주지 말고 좀 인색해질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금물이에요!
결국 세상을 밝히는 것은, 친절함이니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친절함이 문득 떠오르네요. :)
기쁜 8월의 마지막 날 오후와 밤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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