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아주 슬펐습니다.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이런 자괴감에 자주 빠졌던 것 같습니다. 나약하고 연약한 한 인간에 대하여 자비하기는 커녕 참으로 잔인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스스로의 모습을 매일같이 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잠들지 못하고 우는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랑 많은 엄마의 모습이 저는 아닐 때가 많았거든요.
어떻게해서든 저의 기쁨을 빼앗아가고 싶어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에 저는 정말로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 것만 같았고, 그래서 더없이 울적했던 것 같습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뒷부분을 읽으면서, 그나마 '나의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에 대한 분석을 하게 되고는 마침내 침울함이 상당히 해소된 것 같습니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랑스러워짐으로써 사랑받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할 때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사회적 통념(애덤 스미스는 '가슴 속 인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고요.
한편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스스로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의 자아상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인생은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의 영원한 진자운동이라고요. 스스로가 (일반적인 기준에 의거하여 볼 때) 공손하고, 친절하고, 사려깊고, 명예롭고, 진정성 있는 등의 '미덕'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날에는 자신이 자존감이 높아지고, 그렇지 않은 날들에는 울적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하기 힘들고, 모호하고,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미덕이 우리 인생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한다고 애덤 스미스는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 많이 슬펐습니다.
누군가를 신뢰할 수 없었고, 따라서 겉으로 선행의 모양은 갖추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책잡히지 않기 위해' 친절을 가장하고 있었던 것 같거든요. 게다가 제가 공격받지 않기 위해서, 언제라도 상대방의 (계속해서 변하는) 진술에서 허점을 찾아내어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참 힘겨웠고, 마침내 그 시간이 끝나자 저는 허탈해졌습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나 스미스는 한 사람이 사랑스러움에서 한 걸음 멀어지면, 다른 사람들도 점점 사랑스러움에서 멀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런 식으로 모두가 조금씩 멀어진다면, 결국엔 이 사회에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된다. (264)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사랑스러움에 가까이 붙어 있기를 포기하고 멀어지게 된다면, 우리의 사랑스럽지 않아짐으로 인해 타인 또한 미덕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하네요. 미덕을 잃은 누군가의 곁에서 '성배를 지키듯' 변함 없이 고결한 미덕을 고수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낙심하게 되기 쉬우니까요.
원인이었을 수도 있고 결과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사랑스럽지 않았던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요한복음 16장에 보니 기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지금은 비록 근심하고 사랑스럽지 않아 보이기도 하는 모습이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빼앗기지 않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이네요. 창조주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라서요.
무엇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고결함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내일은 좀 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네요.
복되고 평안한 저녁과 밤, 그리고 새날 맞이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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