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코 풀고 와도 돼요?' 말고 '다른 분석도 가능하지 않나요?'라고 질문하는 교실이 된다면

글을써보려는사람 2025. 4. 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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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학생들의 몇몇 질문으로 인해 약간 신경질이 났습니다. 학생들이 잘못을 하면 교사답게, 어른답게 지도를 해야지 짜증을 내면 안 된다는 것을 저는 모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질문을 하는 기특한 학생들에게 신경질을 내다뇨? 제 인내심이 바닥났던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선생님, 코 풀고 와도 돼요?

물론 수업 중에 그냥 박차고 나가는 것보다 예의를 차린 모습이긴 하죠. 그렇지만 한창 중요한 장면을 숨죽여가며 읽고 있는데 중간에 흐름을 깨는 질문을 하면 적잖이 김이 새죠. 그런데 이런 질문 말고 다른 질문들도 교사를 슬프게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August에게 머리카락이 있었어요?

 <Wonder> 수업을 하면서 학생이 나름대로 상상한, 안면 기형을 지닌 August의 모습에는 머리카락이 얼마 없었는가 봅니다. 그런데 지문을 읽다가 Julian이 August를 향해 "Why is your hair so long?(너 머리는 왜 그렇게 기냐?)"라며 공격을 하는 부분을 읽으며 자신의 상상하던 August의 모습에 균열(인지부조화)이 생기자 곧장 질문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질문하기 전에 지문을 읽으면서 이미 답을 알게 된 것 같은데?'하고 그다지 따뜻하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학생 딴에는 지문을 읽으며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 것이 놀라워서 교사인 저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요?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네요. 하지만, 읽어보면 알 수 있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에 대하여 '오~ 새로운 발견을 하고 기분이 좋았구나!'라고 말해주는 것은 오히려 학생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학생들이 좀 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사고를 하기를 기대합니다.

 

 

선생님, Scene 2와 3도 요약해도 돼요?/ 여기에 써도 돼요?

각각 첫 번째 장면을 요약하여 영작하기 활동을 마친 학생들이 그다음 활동을 해도 되는지 물어보는 질문과, 자신 모둠의 영작 내용을 칠판에 기록할 때 칠판에 그린 구획 중 어디에 써야 할지를 확인받는 질문이었습니다. 앞의 질문은 어쩌면 첫 번째 장면을 모둠원과의 협업을 통해 이토록 빠른 속도로 영작했음을 자랑하고 싶어서 한 질문일 수 있겠고, 두 번째 질문은 처음으로 교실 앞에 나와 무언가를 쓰는 상황에서 겸연쩍은 마음을 해소하기 위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질문은 고등학교 학습자가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생각보다 많은 서로 다른 학생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습니다. 혹시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이렇게 '자기 결정권을 행사해 본 적이 없는' 모습으로 아이들을 길러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씀은, '여기에 써. 여기에 놔. 0시까지만 놀아. 사탕은 0개만 먹어. 이 옷 입어. 무슨 책 어디까지 읽어.'와 같은 말을 하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무언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결정해 보는' 경험을 박탈해 온 것은 아닌가 하고요. (나열하면서 저의 자녀들에 대한 제 모습이 겹치는 순간도 많네요. 반성합니다.)

 

 

 

한편 오늘 저로 하여금 거의 눈물을 흘릴 뻔하게 만든 학생의 질문도 있습니다.

 

선생님, Mrs. Garcia가 그래도 예의를 지키기 위해 지은 미소이므로 shiny smile(빛나는 미소)은 꼭 부정적인 미소라고 볼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요?

August를 처음으로 마주한 Mrs. Garcia가 보고 놀라서 시선을 떨군 직후 지었던 미소에 대해 다소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미소라고 분석한 다음 시간인 오늘 학생이 던진 질문입니다. 놀란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인간적인) 반응이었고, 그 후에 본분을 잊지 않고 예를 갖춘 미소를 지으며 학생을 대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아서 되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에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이 (미소를 분석하는) 문항이 서술형 시험에 나왔고, 네가 이렇게 분석을 한다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만점을 줄 거야.'

 

 

선생님, Julian이 어떤 결핍이나 자격지심이 있어서 August를 공격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Julian이 jealous(질투심 나는)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나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심지어) 사회적 약자인 August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Julian의 심리를 이해해 보려는 학생들의 고민의 결과였습니다. '세상에, 너희는 한 번 더 생각을 해보았구나.'하고 칭찬을 해준 후, 하지만 우리는 '근거 기반 사고'를 해야 하는데, Julian이 August의 어떠한 특질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는 단서가 있지 않다면, 이것은 아주 합리적인 설명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특히 모둠을 대표하여 제게 이 질문을 한 학생은 그간 수업에서 소리 내서 읽기를 할 때 무척 자신감 없어하며 심지어 수업을 거부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순식간에 학생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다, 싶어서 '인공지능 시대에 영어는 AI가 다 해주는 것이고, 우리 미래 시대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정말 필요해요.'하고 칭찬을 해주자 학생은 어깨가 한껏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마 학생은 앞으로 이어지는 수업에도 의욕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영어를 예전보다 더 잘 읽게 된 자신의 모습에 놀라기도 할 것이고요. 그러면 저는 또 눈물을 글썽이겠지요.

 

 

저는 학생들이 명철하고 예리하게 사고할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모습을 통해 칭찬받고 싶어하는 듯한 질문은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지금 나의 이 선택과 결정, 혹은 이에 대한 나의 "질문"이 나의 공동체, 우리 사회와 인류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명철하게 생각하고 진취적으로 행동하는 지성인들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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