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예술을 통한 사회정서학습의 가능성

글을써보려는사람 2025. 3. 26.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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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 ... 그들의 작품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형을 다시 잡아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 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알랭 드 보통 <불안> 164면

 
 
위대한 예술작품의 가치는 우리의 가치관, 심미적 감식안, 정서, 공감 능력 및 도덕성에 영향을 주는 데 있다고 합니다.
 
 
 
요즘 학생들과 <원더>의 몇 장면을 발췌하여 읽는 중인데요, 다음은 며칠 전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 검고 큰 물체는 칠판이고, 이것은 책상이라는 거고, 이것은 과학 포스터고, 이것은 분필이고, 이것은 지우개야.

안면 기형을 지녀 홈스쿨링을 통해 교육을 받다가 학교에 처음 온 August에게 Julian이 과학실험실을 소개해주던 장면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Julian의 대사가 실제로 August의 귀에는 어떤 말처럼 들려올까, 하고요.
 
"너 정말 잘 먹는다."와 같은 말이 듣는 사람의 귀에는 "너는 뚱뚱해."와 같이 들려올 수 있는 것처럼, Julian의 말이 August에게는, '너는 안면 기형을 지녔으니 지능도 떨어질 거야.'와 같은 폭력적인 말로 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Julian의 말이 '너는 (이상하게 생긴 데다가) 바보라서 아주 단순한 것들도 알지 못하지?'와 같이 들려올 것이라고 분석하여 영어로 작문하였습니다.
 
그런데 몇몇 학생들은 Julian의 발화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더군요.
 
"너는 이런 기본적인 것들(책상, 칠판, 분필, 지우개 등)은 알고 있을 거야."
"너는 학교에 처음 와서 모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알려줄게."
 
오답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August는 경직되어 어떤 반응이나 말도 하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는 장면이 이어거든요. 글의 맥락상 August에게 굉장히 가슴아픈 말로 들려왔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이 분석한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에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다음의 세 가지 정도입니다. 학생들이 August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말로 인해 상처 받은 직간접 경험이 없어서 이해를 할 수 없거나, 기본적으로 공감 능력이 높지 않은 편이거나, 혹은 '정답'을 알고 있으나 마음의 '어떤 거리낌'이 생겨서 위와 같은 발화가 굉장히 잔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가능성입니다. 저는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저의 추측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쨰,  위와 같이 분석한 학생들의 공통점은 외모, 성격, 학업 등 강점으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편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살면서 놀림의 대상보다는 선망의 대상이 될 때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둘째, 저는 해당 학생들이 자신보다 학업 성적이 떨어진다거나, 신체적 장애 등 외모가 자신만큼 뛰어나지 않은 다른 학생에 대해 비웃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장면을 읽을 때 자신이 때떄로 보였던 모습이 Julian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고, 따라서 '나의 말이 그정도로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하고(혹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의 답변과 자신의 답변과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고, 때때로 자신이 보였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위에서 발췌한, 가치관 정립, 심미적 감식안 계발, 정서 함양, 공감 능력 계발 및 도덕적 판단력 제고 등 예술의 효용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논증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냥 '말 함부로 하면 상처줄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울림을 일으키고,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효과적 인성교육(혹은 사회정서학습)을 위한 방편으로 좋은 문학작품만한 것이 없다고, 저는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상대적으로) 영속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고전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학과 예술에 대한 배움이 너무 짧다는 점을 더욱 깨닫습니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계속 공부해야겠네요.
 


산불이 속히 진화되기를 기도합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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