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 들어가니 어느새 서로 친밀해진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와글와글 교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제하는 방식이 조금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시작종이 울린 이후인데도 양치를 하러 간다고 하거나, 어느 한 학생 책상에 욕설을 써놓고 신나게 웃는다거나, ...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수업의 시작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할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직전 주에 수업 시간을 존중하자며 수업 규칙을 알려준 것이 무색하게 느껴지더라고요. 3월 둘째 주부터요. 속이 상하더군요.
‘조용히 해주세요.'라던가 '선생님과 동시에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말 대신 오늘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보았습니다. 기다림 끝에 모두 조용해졌을 때 작은 소리로 물었습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있는 사람이 있나요?
학생들이 조금 더 조용해졌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지요. 아마 속으로 '혼이 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혼을 내는 대신 판서를 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지금 종이 친 지 6분이 지났습니다. (6)
우리 일주일에 몇 번 만나지요? 3번이네요. (6*3)
그리고 한 학기에는 17주 정도의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6*3*17)
두 학기를 함께 하게 되고요. (6*3*17*2)
(잠자코 곱하기를 시작했습니다. 18*34=612)
한 시간에 몇 분이지요? 50분이요. (612/50=약12)
우리는 총 12번 가량의 수업을 덜 한 채로 동일한 평가를 받게 되겠군요.
엄청난 국가적 낭비입니다. 저는 국민이 혈세로 월급을 받는 교육공무원이고, 학교 수업은 공공재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여러분이 교육 받아야 할 시간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음에 저는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그 어느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않는 상태로, 학생들은 학습지에 자신의 생각을 영작하였습니다.
모두들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았습니다.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선생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행위가 아닌, '나의 학업성적'에 타격을 입힐 뿐만 아니라 '국가적 손실'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 것 같습니다. 작은 낭비들이 모여 엄청난 손실을 이룬다는 점도 충격적이라고 생각한 것 같고요.
이어지는 시간에도 모든 학생들이 잠잠해지고 수업 시작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보았는데요, 이번에는 2분이 소요되더군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1/3로 줄었노라고 이야기하자 학생들이 안도감이 들었는지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떠드는' 것은 아니었고요, 말 그대로 '불안감의 해소'였던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수업 활동에 무척 잘 참여하였기 때문이지요.
모든 것을 '효율성'으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낭비하거나 버려지고 있던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서요.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복되고 평안한 주말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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