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학생에게 짜증을 낸 후 깨닫는, 학교 교육과정의 필요성

글을써보려는사람 2025. 4. 2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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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 짜증낸 이야기

 
지난 주에 학생에게 진심으로 화를 낸 일이 있었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님 생각하며 성스러운(!) 모습으로 지내고 싶었는데 마음 같지 않더군요. 일의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어를 제법 잘 하는 학생이, 수업 중 다루는 내용이 좀 쉽게 여겨졌는지 저의 설명을 듣지 않고 주위 친구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설명을 멈추면 자신도 멈추었다가, 제가 설명을 시작하면 자신도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친구들도 소곤소곤 이야기를 '한 번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군중심리가 참 묘하지요. 별 것 아닌 일(아주 작은 소리로 소근거리는 것)로 수업을 멈추고 침묵을 유지하는 교사의 반응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친구가 덜 민망하도록 함께 도와주고 싶거나 혹은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중에 '오디오'가 겹치면 학생들의 주의 집중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는 모든 학생의 주의를(혹은 적어도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조용히 해주는 배려심을) 요구한 것인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여간 아무리 침묵으로 저의 불편한 심기를 표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슬슬 화가 난 저는 다소 오랫동안 설명을 멈춘 채 기다리고 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저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이야기하던 친구에게 "뭐야? 왜저래?"와 같은 입모양을 하며 소근거렸습니다. 1분 이상 기다리는데도 저를 끝끝내 쳐다보지 않더군요.
 
"작은 소리도 수업을 진행하는 데 상당히 방해가 됩니다."라고 한 마디를 하고, 다시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학생이 저의 말에 피식, 웃더라고요. 저는 빠직, 정말로 열받았습니다.
원래 교사는 이런 일을 합니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도하며, 잘못된 것을 옳게 지도하는 일이요. 아는데, 알고 있는데 비웃음을 들으니 정말 마음 속 깊이 화가 나더군요.
 
주위 모든 학생들은 마음을 졸이며(더러는 흥미진진하게) 급우와 교사의 신경전을 지켜보고 있었고요. 이런 순간에 고함을 치면 모든 학생들이 등을 돌리기 쉽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신경전을 벌이다가 소리를 지르는 교사라뇨. 저같아도 비호감이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미건조한 말투와 낮은 목소리를 장착하고 잠자코 진도를 나갔습니다. 어떤 학생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남은 수업시간이 흘러갔지요. 
 
아휴. 그런데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친구들과 웃으며 장난을 치더라고요. 선생님과의 신경전에서 이겼다는 표시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불러다가 '너희 반에서는 즐겁게 수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아.'하며 짜증을 고스란히 냈습니다. 해당 학생은 물론이고, 온갖 사람과 환경을 탓하는 마음이 들었고, 마음이 계속 불편했지요. 
 
 
 

학교[교사] 교육과정의 필요성

 
그러다가 밤에 가만히 누워 생각해 보니, 문제는 제게도 있었습니다. 작년과 동일한 내용의 학습지를 활용하여 수업을 했으니, 이미 학원에서 해당 학습지를 가지고 이미 학습을 한 학생이라면 무엇하러 이미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귀기울여 들을까요? 게다가 자신은 아는 내용을 다른 친구들은 귀기울여 듣지 못하게 되어 자신만 시험을 잘 본다면, 상대평가 시스템 하에서 위풍당당하게 비교 우위를 점할 수도 있는 걸요.
한편 작년에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해당 학습지를 처음으로 고안하여 수업을 운영할 때에는 학생들의 집중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아직 접해본 일이 없는 '새로운' 내용이었고, 따라서 경청해야만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추후에 학습 내용을 학원에서 복습을 하며 완전 학습을 시도하는 학생은 있었겠고, 이것은 엄연히 학생의 '교육 받을 권리'에 해당합니다.)
 
확실히 학생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네요.
 
 
 
따라서 공교육이 살 길은, 학교 교육과정, 혹은 교사 교육과정을 만드는 일인 것 같습니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학교 단위에서, 그리고 교사가 나름의 방식대로 재구성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수업-평가 전문성은 기본이어야 하겠고, 수업을 연구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필요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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