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피아를 구분하느라 온 정신을 집중하며 치열한 한 때를 보내다 보니, 남은 것은 떳떳함도, 성취감도, 통쾌함도 아닌 바로 허망함임을 깨달을 때의 어떤 느낌입니다.

이긴 사람은 없고 상처받은 사람만 있습니다. 재물, 명예, 권력 등 어떤 것을 지키려고 싸우거나 무언가 쟁취하려고 애쓴 뒤에는 대개 그렇습니다. 골리앗의 머리를 베어 들고 있는 다윗의 표정에도 알 수 없는 씁쓸함이 서려있는 것만 같습니다. (카라바조는 다윗의 얼굴에도, 골리앗의 얼굴에도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하지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는 나르시수스와 달리, 카라바조의 나르시수스는 슬픔에 잠긴 것만 같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아도 칭찬할 만하거나 자랑스러운 구석이 도통 보이지를 않아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포도주와 포도를 원없이 먹을 수 있게 된 순간일지라도, 심신이 고단하여 포도의 달콤함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된 상태인 것도 같고 말이지요.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것인가, 카라바조는 자조적인 미소를 띠는 것만 같습니다.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지만 그냥 고개를 돌리고 말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긴 성경 속에도 인생 자체가 실패작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들이 참 많았어,' 라고 생각하며 성 히에로니무스도 위안을 얻었을 것이라고, 카라바조는 미소지었을 것만 같습니다.

뚜벅뚜벅, 주어진 오늘을 살아나가는 한 주간을 맞이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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