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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만 <프랑켄슈타인>, 나를 위로해주다 만 메리 셸리

간밤에는 모기 네 마리를 연달아 잡고는 잠이 깨버렸다. 마음이 방황에 또 방황을 하다가, 지금 시간들을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 어쩌면 하늘의 뜻일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고, 마침내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도 영 마음이 어지러워 메리 셸리의 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각별했다. 배를 타고 떠나는 모험을 앞둔 화자가 누이 동생에게 보낸 네 통의 편지 부분은 특히 그러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데 다정한 친구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느낌이랄까.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지만, 봄이 되면 날씨가 좋아지겠지. 그래도 올해는 봄이 유난히 일찍 온다고 하는구나. 아마 항해를 예상보다 일찍 떠날지도 모르겠어. 어떤 일도 성급하게 하지는 않으마. 다른 사람들의 안전이 내 손에 달려 ..

도서 2024.11.12

내 마음 속의 전쟁터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 스가랴 7:4-6절 말씀 오전에 들으면서 정말 정말 두려웠던 말씀이다. 무엇을 위해 예배에 출석하고, 무엇을 위해 기독교인임을 드러내고 있는가. 도리어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고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란 말인가. 안식이 깨진 세상이다. 도박, 마약, 음란으로 가정이 깨지고 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실상 들여다 보면 멀쩡하지 않고(내가 제일 이상하다), 삶은 문제 투성이이고 모순이 넘쳐난다. 금요일에 ..

일상 2024.11.10

<죽이고 싶은 아이 2> 독서 일기 #2 - 밥과 친구와 선물

#1. 밥주연은 이끌리듯 죽은 친구, 서은의 집에 간다. 그리고 왜 왔느냐며 돌려 보내려는 서은 엄마에게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는 배가 고파 죽을 것만 같아도 먹을 수 없던 밥이, 왜 서은의 집에서 생각났을까. 밥을 먹는 행위는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생명을 갈구하는 행위이다. 밥과 생명의 놀라운 연관성은 요리 동아리에서도 확인해왔다. 요리 동아리에서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를 해서 나눠먹고, 뒷정리를 위해 협동하는 모든 과정에 제법 성실하게 임해온 몇몇 아이들이, 알고 보니 일반 교과 시간은 물론이고 학급 활동 등 학교 생활 전반에서 지극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담임 선생님과 다른 교과 선생님들을 통해 알고 얼마 전에도 적잖이 놀랐다. 요리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먹는 일은 곧..

도서 2024.11.09

<죽이고 싶은 아이 2>는 청소년 소설이 아닌 청소년 소설이다

#1. 작가의 작중 인물에 대한, 작가에 대한 나의 책임감 책 속의 인물에 대한 책임을 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어느 중학생의 질문을 계기로 이꽃님 작가는 집필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책임감이라는 말은 늘 어렵다. 맡은 역할과 임무에 대한 책임감과, 타인과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감 등, 비스듬해진 몸과 마음의 자세를 고치게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에 대한 서평도 못다 완성한 상태에서, 게다가 두 번째 작품을 다 읽지도 못한 상태에서 독서일기를 시작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자세이다. #2. 너무도 무거운 작가의 명령 이꽃님 작가가 작중 인물에 책임을 지는 방식은, 고통을 경감시키거나 피하도록 놔두지 않는 아주 묵직하고 가혹한 방식이다. 친구를 살인했다..

도서 2024.11.08

<생각에 관한 생각> 독서 일기 - 직관 무용론에 대한 감정적 반응

오늘 읽은 21장 '직관 대 공식' 내용은, 업데이트가 필요하게 느껴졌습니다.   1. 카너먼의 직관 무용론 해당 장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인간의 직관보다 알고리즘, 통계 자료, 빅데이터의 정확성이 높으므로 직관을 무시하지는 말되 무작정 신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타인의 직관을 무시하지는 말라'는 언급은, 직관 옹호론자들의 비난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합리적인 지표와 객관적 수치를 통한 판단이 인간의 직관에 의존하기 쉬운 총체적 평가를 능가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글의 시작이자 결론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기에서 '무시할 만하지 않은'(저는 이 말이 영 불편하게 여겨지는가 봅니다) 직관이라 함은, 충분하고 종합적인 판단 절차를 거친 상태의 직관을 ..

도서 2024.11.07

<생각에 관한 생각> 독서 일기 - 무지함을 인정할 용기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우리의 직관이 틀릴 수 있고, 너무도 명백해 보이는 증거도 때로는 타당한 근거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니얼 카너먼은 에서 '타당성 착각'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입증한다.      1. 무지에 대한 무지장교 훈련을 받을 후보들을 평가하는 작업에서 동료와 함께 '누가 책임자 역할을 하는지, 누가 지도자 역할을 하려다 퇴짜를 맞는지, 각 군인은 팀 전체에 어떤 식으로 협조하는지' 기록하며 '완고한 사람, 고분고분한 사람, 거만한 사람, 인내하는 사람, 성마른 사람, 집요한 사람, 잘 포기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장교 훈련 후보로서의 적합성을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호 검증을 거친 관찰 결과와 실제 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의 수행 정도를 추..

도서 2024.11.06

<생각에 관한 생각> 독서 일기 - 내 그럴 줄 알았지

대니얼 카너먼의 3부 '과신(Overconfidence)'에는 사후(事後) 판단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1. 사후 판단의 개념과 예시 우리들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할 확률에 대해 자신이 내린 이전의 판단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긴가민가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자신의 추측이 맞으면 분명히 그 일이 일어날 줄 알았노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예상이 빗나가면 자신이 과거에 가졌던 확신의 정도를 매우 낮게 기억하거나 심지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편향된 사고에 대니얼 카너먼은 '사후 판단'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후 판단의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줄 알았어. 그 모임은 회원이 점점 늘어날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 2. 사후 판단의 재생산 과정 직관..

도서 2024.11.05

<똥의 인문학>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독서 일기 #3 - 고통의 역설

#1. 고양이의 주이상스 어제 산책을 하다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고양이의 왼쪽 눈에 무언가 붙어 흔들거리길래 보니 살점이었다. 공격을 당한 모양이었다. 가여운 고양이는 계속해서 앞발로 눈을 비볐다. 얼마나 아플까, 그려면서도 계속 비벼대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도 상처에 간신히 앉은 딱지를 가만 두지 못하고 떼어내기도 하고, 입 속 염증을 자꾸만 혀로 건드리는 등 고통 자체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에서 저자가 언급한, 라캉의 향락(주이상스 jouissance) 개념이 이런 것인가 싶다. 또한 계속 뛰다 보면 어느 순간 근육의 피로가 사라지고 도파민이 분비되어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러너스 하이도 비슷한 류의 작용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

도서 2024.11.04

<독일인의 사랑> 독서 일기 - 사랑에 대한 단상

최근 신앙인으로서 나의 신앙이 위기 상황에 처했음을 느끼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가장 빈번하게 이러한 위기를 순간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흔히 사랑하면 떠올리는 '가슴 떨리고 설레며 갈망하는'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가족을 바라볼 때, 학생이나 동료나 다른 교우들을 바라볼 때, 한 영혼을 바라볼 때 안타까이 여기며 그 영혼을 기뻐하는 마음이 내가 추구하는 사랑의 마음이요, 최근에 내 안에서 찾기가 도통 어렵다고 느껴지는 마음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각종 폭풍우가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통에 사랑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겹게 느껴지기도 한 사정이 나름대로 있기는 하나, 이것이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으므로 핑계할 수 없다. 오랜만에..

도서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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