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두려움과 치유에 대하여

글을써보려는사람 2023. 11.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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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대의 공포

 
피아노 레슨을 받고,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내 옆에 앉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좌석에 엉덩이를 1/2 내지 1/3 정도만 걸친 상태로 앉는 것이었다.
내게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상태였다 거나, 혹은 내가 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행색은 아니었던 것 같고, 내가 부피를 지나치게 많이 차지하는 옷을 입고 있는 상태도 아니었는데, 참으로 이상했다.
 

출처: Unsplash

 
 
귀갓길 지하철에서 내리면서야 나는 깨달았다.
 

빈대로구나.
빈대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자세로 앉도록 만든 것이로구나.

 
 
나도 혹시 몰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코트며 치맛자락을 몇 번이고 훌훌 털어내었다.
 
실로 공포심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2. 코로나에 대한 공포

 
코로나가 막 창궐하기 시작하던 시기의 이른 봄날이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침을 잘못 삼켜 사레가 걸렸고, 갑자기 발작적인 기침을 해댔다.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버스 안의 모든 사람의 어깨가 0.5cm가량 올라가고 얼어붙은 것 마냥 경직된 자세들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의 공포심을 달래주기 위해, 큰 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레가 걸려서요.

 
 
그러자 사람들의 뻣뻣하던 자세가 다소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안도의 한숨들이 버스 안에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듯했다.
 
 
공포는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하지만 공포의 원인을 명료하게 알게 되면, 우리의 공포심은 일정 부분 해소된다.
 
 
 
 
 
 
 

#3. 트라우마

 
살면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이후에는, 이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혹은 비슷한 대상을 접하기만 해도 머리가 쭈뼛 서는 듯한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억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이 마비되기도 하며, 이것은 두통이나 땀 등 신체의 증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의 원인이 되는 정신적 충격을 트라우마라고, 그리고 이러한 경험의 지속을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이라 부른다.
 
오펜하이머도 영국의 캐임브리지에서 유학할 당시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이 연애를 하면서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험, 그리고 화학에서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마음이 많이 고달팠던 것 같다. 정신분석가들의 상담을 장기간 받았지만, 결국 그를 치유한 것은 문학의 힘이었다고 한다.
 
문학을 읽고, 시를 쓰고, 고국의 은사님이나 동생에게 편지를 쓰며 그는 점차 자신감을 되찾고 안정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것들은 치유의 힘이 있다.
 
 
 
 
 
 
 

#4. 견해

 
두려움과 공포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공포의 원인을 이성적으로 파악하게 되면 두려움이 일정 부분 해소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를 치유한다. 문학을 통해, 예술을 통해,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우리 삶의 애환이, 모든 눈물이, 모든 몸과 마음의 질환이 치유되었으면 좋겠다.
 
온 세상을 경영하시고 아침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의 선하고 아름다우신 성품에, 더욱 의지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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