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거 읽어 보셨어요?
둘째 아이가 담임선생님께 받은 가정통신문 문구를 손으로 가리키며 읽어준다.
"새학기를 맞아 아이들은 불안하고 힘듭니다.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많이 해주시고..."
방금 큰 아이를 혼내는 모습을 보고, 나 들으라고 읽어주는 것이었다.
요녀석이, 싶었다.
상황인즉슨 다음과 같다.
건강상태조사서, 선생님께 들려드리는 우리 아이 이야기(가정환경조사서) 등 보호자에게 제법 많은 양의 쓰기 과제가 부여되는 신학년 첫날, 쓰기 숙제를 제법 마치려는데 큰 아이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린다.
대만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던 날이 떠올랐다.
아이를 안아주며 무슨 일인지 물으니, 학교 생활이 불안하게 느껴진단다.
왜 그러니,
첫째, 공부가 어려울까봐,
저런 저런 우리 큰 애기...
둘째, 휴대폰 제출할 때 부끄러울 것 같아서,
......!
순간 빠직, 하고 화가 났다.
문학 전집을 다 읽으면, 대학교 들어갈 때 사주기로 했던(물론 정말 대학교 갈 때까지 2G폰으로 버티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이미 태블릿 PC로 둑이 허물어진 상태에서, 최대한 스마트폰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늦게 쥐어주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사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는데,
아이는 포카와 태블릿 PC를 활용한 영상 만들기에 열중하느라 책은 도통 가까이 하지 않는 방학을 보냈다.
그래놓고 한껏 원망하는 말투로,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아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엄마로 만들어 버리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격려해주는 것, 공감해주는 것, 긍정적인 언어 및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것,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의무와 책임감과 약속 이행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균형감을 잃으면, 우리는 자칫 유약한 응석받이만 양산하는 결과를 나을 수도 있다.
권리에 대한 교육은, 반드시 의무와 책임에 대한 강조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의무에의 강조를 애정이 없는 상태로 혼동해서도 안 된다.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렵다.
마침내 아이가 책을 펴들어 다행이다.
읽으렴, 그리고 쓰렴.
읽자, 그리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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