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분노와 욕구, 그리고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3. 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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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지점에서 욕구를 진단하다

 
내가 분노를 느끼고 있는 지점을 들여다보면 나의 욕구나, 중요시하는 가치관이 보인다.
 
딸아이가 학급임원 선거에 출마해서 거의 매번 한두 표밖에 얻지 못하다가 이번에는 일곱 표를 받아 아깝게 떨어졌다는 소식에, 어미로서 기쁜 마음을 동료들과 나누고 있는데 불쑥 어느 분이 말씀하셨다.
 
 
"엄마를 닮아서 자리 욕심이 있네요."
 
황당했다. 그러나 마음 깊이 불쾌한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저,
 

아, 그런가요? 개과천선해야겠네요.

 
 
하고 말았다. 집에 와서 이 일을 곱씹어 볼 때, 좀 더 날카롭게 쏘아붙일걸, 하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분노가 치밀지 않는다는 사실에 도리어 만족스러웠다.
 
 
내가 무언가 보상을 바라고, 감투를 쓰고 싶어서 현재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더욱 확인할 수 있었고, 또 예전에 비해 내 자신이 조금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워진 듯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자리 욕심'은 현재 나의 핵심 욕구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나의 화나지 않음으로 인해 안도감 혹은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나의 내면에 실제로 이러한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동안 얼마나 자리 욕구(인정 욕구? 명예욕?)로 인해 마음을 써왔으면 이것이 더 이상[혹은 그저 지금 이 순간...나는 언제나 변화하고 있으므로]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겠느냐는 말이다.
일을 곱씹어 보았다는 사실, 이 사건을 글의 소재로 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의 욕구 언저리를 건드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편, 이 말의 주체가 평소 나를 꿰뚫어보는 이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자칫 커다란 공격으로 들려올 수 있는 말이 ‘흘려듣기’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출처: pixabay

 
 
 
반면, 나를 정말이지 순식간에 깊은 수렁에 빠뜨리는 말들도 있었다.
 
 
 

무례하게 행동한다.
착한 척한다.

 
 
 
한 손에 꼽히는, 이미 지난날들의 일이긴 하지만, 이런 말들이 왜 그리도 괴로웠을까, 생각해 보면,
예의와 선함은 내가 매우 중요시하는 가치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예의 바른 사람이 되고 싶고 친절함을 지닌 사람이 되고프다는[혹은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갈망이 있는 상태에서 정반대에 해당하는 평가를 받았기에, 나는 아주 커다란 모욕감[당혹감?]을 느꼈던 것이다.
 

출처: pixabay

 

 

내 마음을 많이 어지럽게 혹은 기쁘게 하는 요인들은 사실, 나의 욕구의 자취들이다.

 

한편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면서 감정의 변화가 너무 극에서 극으로 치닫지 않고 조금은 마음에 충격 완화 쿠션이 생긴 것 같아서, 지금의 내가 좋다.
 
 




 

마음의 힘을 길러주다

 
마음에 부드럽고 따스한 쿠션을 한 겹, 한 겹 덧입혀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
 
오늘 수업할 때 내가 넣어준 것 같은, 그래서 아주 기뻤던 쿠션은 다음과 같다.
 

The only reason why I speak English better than you guys is that I've made more mistakes than you have made so far. So don't be afraid of making mistakes.

 
 
 
선생님이 학생들에 비해 영어를 잘하는 유일한 이유는 영어로 실수를 훨씬 많이 해보았기 때문이라고, 실수는 배움의 핵심 요소라고 말해주자 학생들 표정에서 긴장이 19% 정도 사라지고 안도감이 5% 정도 늘어난 것 같았다.
(모나리자의 미소에 기쁨이 83%, 슬픔이 17% 섞여 있어 그토록 오묘하고 아름답다는 글을 읽고, 나도 뭔가 있어 보이게 써보고 싶었다.ㅎㅎ)
 
 
 

 
 
 
 
명색이 교육분야크리에이터로서 깔때기 이론,
교육은, 마음과 머리의 을 길러주는 행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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