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지도를 할 때 교사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자, 학생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점은 개별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하는[받는] 일이다.
교육청 예산으로 글쓰기 지도용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구매하여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반가웠다.
미루다가, 오늘에야 실제로 시도를 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결국은[혹은 아직까지는] 기기보다 사람이 낫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자작자작 프로그램을 활용하기 위해서 나는 1)인증 절차를 거쳐 회원가입을 해야 했고, 2)페이지를 구축해야 했고,(여기에는 구축한 페이지 복제를 통해 반별 별도 생성된 페이지를 구축하거나, 혹은 구축한 페이지 내에서 학생을 학반별로 묶어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지, 혹은 사용 관련 문의를 마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문의 창을 없앨 방법이 무엇인지 등등 문의와 답변 사항 적용을 위해 들인 아주 많은 타이핑과 클릭이 포함되어 있다.) 3)글쓰기 프롬프트와 예시를 구상해야 했고, 4)적절한 시각자료를 검색해야 했고, 5)채점기준을 작성해 넣어야 했다. 그런 후에는 6)실제로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때 보게 될 화면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아이디로 접속을 해야 했고, 7)학생 글쓰기 활동 및 교사 채점 및 피드백 제공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AI 작성 도움' 기능을 활용해가며 예시 글을 실제로 작성해야 했고, 8) 교사 아이디로 다시 로그인을 하여 AI를 활용한 채점 및 피드백 제공을 시도해 보아야 했다.
그리고 오늘 업무 시간의 대부분과, 퇴근 후 시간까지 한 시간 가량을 추가로 투입하여 8)번까지의 절차를 마친 결과 얻어낸 것은, 다음과 같은, 결국 교사가 점수를 “수기로” 입력해야 하고 피드백을 “수기로” 작성해 넣어야 하는 빈칸 가득한 양식일 뿐이었다.
학습지로 제작했더라면 불필요했을 다섯 가지 과정--1, 2, 6, (7), 8번--을 추가로 거치고 나서, 나는 학습지로 수업을 준비하고 평가할 때와 똑같은 결과물만을 얻어낸 것이다.
내가 무엇보다 안타까이 여기는 것은, '글쓰기 활동을 돕는 프로그램'을 표방하면서도, 수요자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는 거의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 게다가 이것을 수업 시간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구매하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신랄한 비판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교사의 입장에서, 학반별로 그룹을 지정 및 관리할 수 있는 중요하지만 부차적인 기능은 기술의 초기 단계이므로 그렇다 치더라도, 이러한 인공지능 기반 작문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인공지능을 통한 피드백 제공 기능' 조차 제대로 구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믿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학생의 입장에서 글을 쓸 때에도, AI 작성 도움을 받아 기본적인 글감을 얻는(인터넷 검색창으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것과, 맞춤법 검사를 할 수 있는 (구글 워드 문서 혹은 한글 문서에서도 자동으로 빨강/파랑 밑줄이 그어져가며 체크를 해주는!) 기능 외에는, 교사가 제시한 채점 기준에 비추어 제출하기 전 자신의 글을 교정할 수 있게 되는 등 글쓰기 활동을 경험할 때 가장 절실하게 여겨지는 도움은 전혀 제공받지 못한다.
이쯤 되니, 차라리 글쓰기 수업 관련 데이터(교사 프롬프트, 채점 기준, 학생 생성 글 등) 수집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마저 들었다.
유료 버전으로 출시하여 적지 않은 가격에 판매를 시작하기 전에, 글쓰기 지도에 관심을 지닌 교사를 체험단을 모집하여 프로그램의 개선점을 파악하고 보완하는 절차를 거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무쪼록, 교육 현장에 필요한 좋은 기술이니, 잘 개발되기를!
(이러한 시행착오를 몸소 겪어가며 개선점을 찾아내며 기술의 발전에 기여해온, 나와는 무척 다른 성향을 지닌, 이 땅의 모든 선구자적 모험가들께 박수를 보낸다. 진심이다.)
그리고 나도, 내일은 좀더 내실을 갖춘 알곡 같은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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