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샘께 감사를 표했던 귀요미 학생의 최근 수업 후기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영어가 어려웠던 학생이 어찌하여 이번 수업에서는 즐거움을 느꼈을까요? 지난 시간에 끙끙거리며 해석했던, 제법 어려운 내용의 지문을 이번 차시에는 그림으로, 표로, 다이어그램 등 1)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2)친구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랍니다.
※ 참. 이 수업은 어느 훌륭하신 선생님께서 또 다른 훌륭하신 선생님께 배운 방법을 전수받아, 제 수업에도 적용하고 있는 방식이랍니다.
정보 변환하기 + 선택권을 주기 + 협력을 유도하기
정보를 다른 형태로 변환(transformation)해보는 활동은 고등정신능력을 요하는 좋은 활동입니다. 이 때, 표로 나타내 보자, 하는 식으로 정보를 인출할(retrieval) 형태를 지정해줄 수도 있지만, 그림, 표, 다이어그램 중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을 선택해 보도록 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넘겨 받게 되고, 좀 더 열심히 참여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저는 각 모둠에 이면지를 한 장씩 나눠주고, 모둠별 정보 인출 방식을 20초 회의를 통해 한 가지씩 선정하도록 했습니다. 그림으로 표현할지, 표로 표현할지는 단순 선호도이므로 학습에 투입되어야 할 시간을 낭비하거나 수업 분위기를 '느슨하게'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후에는 5분의 시간 동안 한 단락으로 구성된 영어 지문(지난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해석을 한 차례 했고, 이번 차시의 정보 변환 활동은 복습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답니다)을 선택한 방식으로 표현해 보도록 했습니다.
이때, '모든 사람의 글씨체 혹은 그림체가 들어가도록 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아 모든 학생들의 참여를 통한 협력이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헨리 뢰디거, 마크 맥대니얼, 피터 브라운의 저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반론을 다음과 같이 제기하더라고요.
각자 선호하는 학습 유형(learning style)에 맞게 지도를 받으면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청각 자료나 시각 자료로 학습할 때 더 잘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견해는 실증적인 연구로 입증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학습에 기울이는 지적 능력은 실로 다양하다. 가장 수월하다고 여기는 방식으로만 지시받고 경험할 때보다, '약간 빗나갈 때' 온갖 재능과 지략을 동원하여 더욱 바람직하게 학습할 수 있다.
학생이 선호하는 방식을 고르도록 하는 것도 학생 중심의 수업을 설계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인지심리학 연구 결과에 기반한 '효과적 배움'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늘 선호하는 방식만 선택하기 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탐구를 하는 것도 두뇌를 자극할 수 있는가 봅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방식을 경험하게 하기 + 집단지성을 발휘하게 하기
모둠이 선택하여 협력을 통해 변환한 정보를 다른 모둠에 넘겨 3분 동안 수정보완해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같은 정보를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방식으로 고민하고 표현해 보게 되죠. 물론 옆 모둠에서 넘어온 종이도 똑같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다른 모둠 학생들이 그린 ‘다른’ 그림의 틀에 맞추어 정보를 수정보완해야 하므로 이 또한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탐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총 6~7개의 모둠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종이가 교실을 한 바퀴 돌아다니는 동안, 학생들은 6~7번의 서로 다른 탐구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시간을 점차 줄이기
자신의 모둠의 탐구 방식을 결정하고, 백지에 획을 긋기 시작하는 데에는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그러나 기존의 아이디어의 적절성을 판단하고 이에 아이디어를 덧붙이는 일은 처음의 활동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5분, 다음 번에는 3분, 그 다음 종이에는 2분, 1분 30초, 1분, 45초, 30초, ... 이런 식으로 할당하는 시간을 줄여나갔습니다. 반복을 통해 학생들은 지문의 내용에 점점 더 익숙해지니까요.
같이 계속 3분씩 주게 되면, 남는 시간이 생기게 되고, 수업 분위기는 늘어난 고무풍선처럼 헐거워집니다. 안 되죠.
시간을 줄일 뿐만 아니라 조금씩 추가 과제를 부여하는 것도 '박진감 있는' 수업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종이를 넘겨줄 시간이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주문을 하면 됩니다.
이제부터는 지문의 디테일을 표현하는 데 집중해주세요.
이렇게 하면 얼굴에 수염 그려넣는 데 집중하던 학생들을 과제 속으로 다시 들어오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자, 학생들이 13분 45초 동안 집단지성을 발휘한 결과물을 감상하실까요?
독자님들께 시각자료를 드리니 저도 과제를 드릴게요.
학생들의 산출물을 살펴보며 어떤 내용의 지문이었는지 맞춰 보세요!
자신의 그림, 표, 다이어그램이 훨씬 정교해지고 또 상상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변화되어 돌아온 것을 박장대소를 하며, 손뼉을 치며, 혹은 감탄을 하며 지켜보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재미란!
자, 독자님께 드린 과제의 답도 확인해볼까요?
어떤 내용의 지문이었을까요?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에서 발췌한 지문이고요, 스크린으로 글을 읽은 학습자들이 같은 글을 책으로 읽은 학습자들에 비해 글의 세부사항을 떠올리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내용의 글입니다. 세부사항을 놓치는 것의 단점을 강조하기 위해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의 내용을 언급하였고요.
(여담입니다만 저는 내년부터 보급될 예정이라는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학습력 제고의 측면에서는 걱정이 많이 되네요.)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
활동 후에는 차분하게 학습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수적입니다. 방금 친구들과 함께 지문의 내용을 표현한 다채로운 방식 중 한 가지를 골라 자신의 학습지에 표현해 보도록 함으로써 마무리를 했습니다.
모둠에서 선택한 내용이 아니어도 되고, 이번에는 모둠원과 같은 방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정보를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학생들이 각자 선택해 보도록 하고, 한 차례 더 복습을 하도록 한 것이죠.
아마도 아이들이 지문에 대한 이해가 잘 되었겠지요?
학생들의 수업 소감을 보니 과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영ㅇ어 재밌다’는 생각도 들 법했던 같고요. :)
평안한 주말 맞으세요!
협동학습 진행 수기 - 명필 선생 납시오 - https://hn47749.tistory.com/m/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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