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모비딕>과 각설이 모자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5. 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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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을 거쳐간 책이며 물건들은 금세 헌 것이 된다.




낙심하고 좌절해온 순간에 하늘을 원망하며 기도해 온 것보다 더 놀라운 선물을 안겨주셨다는 간증을 들으며 엉엉 울었다. 울고 또 울던 기억이 나서, 그리고 너무너무 부러워서 많이 울었다.

바라고 바라다가, 그냥 안 주셔도 된다고, 내 인생 주께서 알아서 인도해주시고 회복시켜주시라고 일정 부분 체념[맡김? 드림?]한 것 같기도 한데, 저 깊은 저수지에서 끌어올린 듯한 눈물이 또 왈칵왈칵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무언가 크고 놀라운 일을 내 인생에도 보이실 것을 적잖이 기대하고 있었구나, 싶다.

그런데 내가 바라 마지않는다고 생각하고 또 말해온 것이 어떤 것들이며, 그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또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모비딕>을 읽으며, 드는 것이었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그런 것인지, 서론이 길다. 두서도 없을 예정이다.



  • p.233~234 지금 당장은 간단히 윤곽만 잡아 놓고 후세의 연구가들이 남은 항목을 채우더라도, 이제 고래의 다양한 종을 정리할 대중적이고 포괄적인 분류법이 필요하다. 더 뛰어난 누군가가 이 일을 맡겠다고 나서지 않으니 부족하나마 내가 시도해 보려 한다. 완벽할 수는 없다.
  • p.249 마지막으로, 시작하면서 말했듯이 이 분류 체계가 여기서 당장 완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약속을 지켰다는 건 분명하다. (중략) 작은 건물들은 애초에 시작한 건축가가 완성할지 모르지만, 웅장하고 참된 건물은 후대에게 최후의 마무리를 넘기는 법이다. 내 손으로 뭔가를 마무리 짓는 건 신이 금하는 바, 이 책은 전체가 초고, 아니 초고의 초고에 지나지 않는다. 아, 시간이여, 힘이여, 돈이여, 그리고 인내심이여!


<모비딕>의 ‘고래학’ 장을 집필하는 멜빌은, 내면의 겸손을 지닌 자의 모습이다. 자신이 품은 원대한 이상향을 스스로의 손으로 완성해낼 수 없음을 일의 시작과 마지막에 고백한다.

내가 나 자신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며, 타인의 업적을 욕심내거나 갈취하지 않으며, 묵묵히 주어진 분량의 일을 충실히 감당하며 살았노라는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늘 기도해온 것 같다.

입으로는 말이다. 마음으로도 진실되게 소망하는 순간도 있기는 있어왔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도 그랬으면 좋겠고.



  • p.252~253 그런 관례와 격식 뒤에서 그가 때때로 가면을 썼다는 사실은 결국 밝혀지지 않을 수 없을 터다. 어쩌다 정당한 용도가 아닌 좀 더 사적인 다른 목적에 이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중략) 한 사람의 지성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한들, 다소 하찮고 천박하더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종의 기교와 은폐의 도움을 빌지 않고서는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실질적이고 유효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없다. (중략) 몇몇 왕실에서는 심지어 우매한 백치에게 권력을 넘겨주기도 했다. (중략) 그리고 황제와 제왕을 언급하기는 했어도 여기서 다루는 인물이 단지 에이해브 같은 늙고 불쌍한 고래잡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장엄한 치장이나 덮개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 에이해브여! 당신을 위대하게 해줄 것들은 하늘에서 따고 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리고 형체 없는 허공에 그려 내야 하리!


실력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정치력 좋고 줄 잘 서는 사람이 유명해지고 권력을 쥐고 흔들기도 하는,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다름 아닌 나를 보고도 누군가 이런 소리를 해왔을 것이고, 지금 이 시각에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상은 정말로 그렇게 돌아간다. 나도 그 세상 속에서 일렁일렁 파도를 ‘영리하게’ 잘 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십자가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서 말이다.

아, 세상에나! 그런데 우리가 타인의 공을 자신의 업적으로 둔갑하고, 슬며시 타인을 비방하고 깎아내리기도 해가며 마침내 쟁취한 왕관이 실은 각설이 모자일 뿐이었다면... 그 허망함을 어찌 감당할 수나 있을까.

나의 진짜 왕관은 무엇이어야 하며 내가 (부인하고 싶으나) 거머쥐고 싶어 갈망하는 각설이 모자는 무엇인지, 반문해 본다.



나의 염원이 그리스도의 염원과 합일될 수 있다면.

진정한 회복과 치유가 임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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