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는 다음 날 너무 피곤할 것이 염려되어 19:50 초급반 수업을 듣다가, 어제부터 21:00 중급반으로 이동하여 수업을 들었다. 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놀랐다. 내가 중급 발레 수업에서 놀란 이유와 교실 수업에의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수준 높은 수업이 생각보다 더 흥미로웠다.
파쿠르(내 귀에는 '빠끄르'로 들렸는데 검색해 보니 ‘파쿠르’란다) 제떼, 역(?) 발란세, 그리고 아직 숙지하지 못한 이름 모를 응용 동작을 아라베스크, 파드브레, 에튀튜드 등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동작과 연결해서 배웠다. 기본기에 충실한 반복 훈련에 약간의 응용이 곁들여지는 초급반 수업에 비해 도전적인 과업이 많이 제시되었고, 동작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데에도 엄청난 노력이 들었다. 그러나 수준 높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감이 느껴졌고, 반복을 통해 점차 동작 수행 정도가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https://youtu.be/wbCrTMuSsek?feature=shared&t=132
https://youtu.be/irnhKqB2hR0?feature=shared&t=196
두 번째로 내가 놀랐던 점은, 다른 분들의 기량이 놀랍게 향상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객관적 사실을 말하자면(이 말을 쓸 때 내 마음의 표정을 잠깐 살펴본다), 중급반 수강생 중에서도 나의 기본기가 가장 탄탄한 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재즈댄스를 배우기 시작하여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고 공연을 위한 훈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무용 기본 동작이 제법 몸에 익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육칠 개월 전까지만 해도 같은 초급반 수업을 수강하던, 발레 실력이 아주 낮은 수준이던 분조차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는 점이다. 폄하하고자 하는 말이 전혀 아니다. 실제로 팔의 자세, 다리 모양, 손끝 등 발레의 기본과 거리가 멀던, 내 기억 속의 그 동작들이 이제는 아주 많이 다듬어져 있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강도 높은 훈련을 경험했던 나의 기본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선생님께서 제시하시는 동작을 순서대로 이행함에 있어서 그분은 나보다 우수했다.
기본기만 믿고 중급반 수업도 문제없다고 으스댈 준비가 되어 있었던 나는 베짱이요 토끼의 모습이었다.
셋째, 나의 실력은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기본기는 중요하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는 아들의 기본기 훈련을 위해 대회 출전도 못하게 했다고 하지 않은가. 자유자재로 양발을 사용하고, 응용 동작을 이행할 수 있으려면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
https://hn47749.tistory.com/14
하지만 기본기에만 머무르면 실력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내가 어제 발레 학원에서 절감한 사실이기도 하다. 초급반 수업을 수강하는 일 년 남짓한 기간 동안 '도전 과제'에 대한 역치가 나도 모르는 사이 상당히 낮아져 있었음을(실제로 기본 동작에서 조금만 응용을 해도 선생님께 우는 소리를 해왔다), 그리고 이것이 실력 향상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나는 어제 몸으로 깨달았다.
넷째, 교실수업에의 시사점: 고차원적 사고력 학습의 중요성
실력이 낮은 학습자라고 해서 쉬운 과제만 제공하는 것은, 학생이 할만한 수준의 과업을 제공하는 배려가 아닌, 학생의 기량이 향상될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차별이 될 수도 있다. 한편, 다소 버거워 보이는 과제가 ZPD(Zone of Proximal Development, 근접발달영역)를 극대화시켜 학습력 자체를 향상시키는지도 모른다.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눈이랑 뇌가 계속 돌아갔다, 국어와 같이 능력이 향상되었다, 그냥 한국어로
글을 쓸 때도 논리 정연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
연간 진행된 에세이 쓰기 수업을 마친 작년 1학년 학생들의 반응이다. 위 응답을 한 학생들은 영어 문장 소리 내어 읽기가 잘 안 되는 친구부터 영어의사소통능력이 상당히 높은 학생까지 다양하다. 파닉스가 잘 안 된다고 해서 알파벳 교육만 시키다 보면, 학생들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에세이 비슷한 무언가를 써내는 경험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한편 논리적 글쓰기와 같은 고차원적 사고력 수업은, 수준이 높은 학습자와 상대적으로 낮은 학습자 모두에게 유의미한 학습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서도 힘들게 배우는 과정을 효과적인 학습의 중추적 요인으로 꼽고 있지 않은가!
인공지능 이제 그만~
'역할극 소재로 1학기 수업 중 배운 어떤 내용을 다루어도 된단다. 인공지능이나, ...' 했을 때 어떤 학생이 나의 말을 끊고 소리친 내용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에세이를 쓰느라 눈과 뇌를 기를 쓰고 굴린 결과이다. 그리고 이렇게 분투하는 과정에서, 학습자의 기량은 향상된다. 공감했기에, 나는 인공지능이라는 주제에 대해 격한 거부 반응을 보인 귀요미에게 말했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니.
정말 고생 많았어요.
딴 거 하자. 딴 거 하자.
하며 토닥여주었다. 학생과 친구들은 배시시 웃어 보였다.
한편 어제 딸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다가 갑자기 외쳤다.
소금물 문제 좀 그만 나와~
'인공지능 이제 그만~'이라던 어떤 언니의 함성에 대해 들려주니 아이가 깔깔 웃는다.
저녁에 '엄마, 이제는 설탕물이에요.'라는 말에 박장대소하는 엄마와 언니를 바라보며 둘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아이들의 지적 근육이 향상되는 중이다.
고차원적 사고력 수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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