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어떤 교실의 기초학력 필살기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1. 2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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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형제로 보이는 초등학생 두 명이 뒤따라 탔어요. 타는 순간에도, 올라가는 중에도, 내리는 순간까지 학생들의 눈은 각각 손에 들린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어요. 엿볼 생각은 없었고 고개를 돌리니 보였는데요, 1분 이내의 길이로 제작된 듯한 영상을 몇 초 단위로 넘겨가며 보더라고요.

교사인 저를 슬프게 하는 순간이었어요. 학습에 도무지 몰입할 수 없는,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의 (게임에 중독된) 학생들의 어린 시절이 이와 비슷한 모습이었을 수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영상에 몰두하는 동안 아이들의 기억력과 사고력을 주관하는 전두엽이 마비된다고 해요. 집중력이 좋은 게 아니고, 집중력을 없애는 것이죠.

기초학력 부진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스마트기기에의 조기+과다노출로 인한 학습력 저해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네요.

저는 시간을 되돌리는 자도 아니고, 모든 스마트폰 과의존 학생들을 쫓아다니며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오늘 포스팅에서는 교사로서 기초학력 향상을 위해 제가 저의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적어보려고 해요.


1. 1:1 피드백


어제 논술 수업 시간이었어요. (영어교사인 제가 논술을 가르치다니, 웃으셔도 돼요. 저도 웃겨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교사 수급 등의 문제로 이렇게 창체나 교양 수업을 다양한 교과 선생님이 ‘나눠 갖기’를 해야만 하는 사정이 좀 있답니다.)

학생 관심분야별 논문을 읽고 요약 발표한 후 관련된 주제를 선정하여 논증문을 한 편 쓰는 과업을 진행하는 중인데요, 어느 학생이 논문 이해에 지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고등학교 수준 학습자에게 학술논문은 당연히 어렵죠. 그런데 이 학생은 기본 독해가 안 되는 상태여서, ‘논문 밑줄 쳐가며 읽고 메모해 보자’, ‘이해가 안 되면 한 번 더 꼼꼼히 읽어보자’ 하는 수준의 지도는 이 학생에게 턱없이 부족했어요.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며 울상인 학생을 볼 때, 교사의 머릿속은 꽤나 복잡해져요. 교사의 전문성이 필요한 순간이니까요. 정답을 바로 알려주면 배움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학생이 찾아가도록 이정표를 여기저기 놔주는 거죠. 단 필요한 만큼 적당히요. 징검다리를 중간까지만 놔주면 될 때도 있고, 거의 끝까지 손 잡고 데려다줘야 할 때도 있어요. 같은 학생이어도 배우는 내용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달라져요. 친구랑 싸운 다음이거나 밤새 잠을 못 이룬 다음날에는 선생님 말씀이 귀에 안 들어오잖아요, 왜.

1.1. 가리키기

마치 미술해설가가 예술작품을 확대하여 일부만 보여주며 자세히 관찰하도록 돕듯, 학생에게 말했어요.
 ‘결론 부분에 학자가 연구한 내용이 요약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요. (손가락으로 결론 부분에 크게 원을
그리며) 이 부분을 읽고 메모장에 써봅시다.’
한참을 낑낑대더니 ‘기술혁신은 좋은 점도 있고 한계도 있다.’라고 써왔어요. 아직인 거죠. 그래도 아직 정답을 가르쳐주면 안 돼요.

1.2. 질문하기

‘어떤 점이 좋고 어떤 한계가 있다고 하니?’
질문은 학생의 이해를 확인할 수 있고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에요. 대답을 해내면, 내용을 적어보게 하고 다음 미션 하라고 하산(?)시키면 되고요, 못하면 다른 디딤돌을 생각해야 해요.
대답을 못하더라고요.

1.3. 시범 보이기

다음 단계는 시범 보이기였어요. 물론 제가 기술하는 일련의 디딤돌에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첫째’라는 단어에 동그라미 치고 해당 부분에 밑줄 그으며) 기술 혁신이 어느 기업에 더 효과적이라고 나오니? 중소기업이야, 대기업이야?’
‘... 중소기업이오.’
‘와우, 정답.’
실제로 정말 기쁘기도 하지만, 이럴 땐 특히나 폭풍칭찬이 필요해요.

학생이 경험한 작은 성취가 크고 지속적인 성취로 이어지도록 해야 하거든요.

‘바로 이렇게 하는 거야. 자, 또 어떤 성과가 있대?’
아직 머뭇거려요. 혼자 날 수 있기까지 모델링이 좀 더 필요한 거죠. 그럼 둘째 내용도, 필요하면 셋째 내용도 같이 찾아보는 작업을 반복해요. 그러면 어느 순간 학생 눈빛에 힘이 실려요.
‘다섯째부터 한 번 파악해 보고, 그다음에는 한계점을 찾아보자.’
서툰 날갯짓을 응원하며 다음 학생에게 다가가요.

장난 아니죠. 이런 학생들이 교실에 10명 가까이 있고, 또 진도도 바쁜 상황이라면...? 1명의 교사로는 역부족이에요.



출처: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zFSo6bnZJTw?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reditShareLink

 

 

2. 코티칭(학습튜터)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는 tiered system이라는 제도가 있대요. 한 교실에 교사가 두세 명씩 들어가 협력수업을 하며 기초학력부진학생에 대해서 학습지도를 하고, 지속적인 학습 및 심리 상담을 제공하는 시스템이죠. 그야말로 부모도 포기한 아이들을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돌보는 것이에요.

올해는 서울시교육청에서도 방과 후 학습지도, 상담 등을 돕는 학습튜터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요. 저희 학교도 예산을 지원받아 학습튜터 선생님을 두 분 모셨어요. 만세!

일단 수업에 두 분 혹은 세 분 선생님이 함께 입실하니,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 어려워져요. 그리고 짝활동, 모둠활동, 개별 활동 등 다양한 수업의 국면에서 1인 교사가 진행할 때보다 훨씬 효과적인 지도가 가능해지죠. 그물망이 촘촘해져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보이지만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현저히 줄어드니, 배움의 밀도가 높아지는 거예요. 중간중간 학생들의 피로도나 이해도를 파악하고 협의하며 수업 형태나 양을 조절할 수도 있고요.

저희는 적어도 2~3주에 한 번씩 다섯 명의 선생님들이 모여 1학년 수업 운영을 위해 정기적으로 수업 회의를 해요. 학습 내용이 정제되고 깊이 있어지며, 반별 수업 내용과 질이 균질해지죠.

아름답지 않나요!

 

2. 다각적 지속적 피드백


1:1 피드백의 방법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논의했죠. 그런데 피드백 제공의 주체가 단수 혹은 복수의 교사만으로 국한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학생들은 또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거든요. 타인을 가르쳐주면서 누구보다 자신이 많이 배운다는 것도 검증된 사실이고요.

강의식 수업을 진행하면 10% 미만의 학습 효과가 있고, 모둠활동 등 학생 참여 수업을 통한 학습 효과는 30% 정도가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대요. 개개인이 sns나 블로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의 생산자가 되는 1인 미디어 시대에,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기초학력이 더더욱 저하된 이 시기에 같은 연구를 시행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강의식 ‘일변도의’ 수업의 효과는 훨씬 낮게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짝활동 및 모둠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서로 배울 기회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그리고 이때 동료 상호 피드백을 활용하면 학생들의 학습력이 훨씬 높아진답니다. 타인에게 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자신의 산출물을 개선할 수 있을뿐더러, 타인의 산출물에 피드백을 주면서 좋은 산출물에 대한 안목이 길러져서, 자신의 산출물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되거든요.

다만, 선생님들은 양질의 동료 피드백이 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어떤 것에 포인트를 두고 피드백을 제공해야 하는지, 건설적인 피드백은 어떤 방식으로 주는 것인지 배우고 나면, 학생들은 서로에게 훨씬 똑똑한 피드백을 줄 수 있게 된답니다.


3. 배움에 대한 배움


학습 전략에 대해 배우는 것도 아주 중요해요. 교육학 용어로는 strategies learning이라고 하죠. 동료 상호 피드백 관련해서도 언급했듯, ‘내가 잘 배우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학습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아주 중대한 요인이거든요. 학습 전략은 노트필기하는 법, 암기하는 법, 요점을 정리하는 법 등 아주 다양한 ‘학습을 잘하기 위한’ 방법들이에요.

사실 학교에서 보면, 공책 정리를 잘하는 학생들이 드물어요. 어떤 선생님께서는 지나치게 친절한 학습지를 제공하는 교사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고 분석하시더라고요.

일견 맞는 말이에요. 저만 해도, 수업 모델을 개발하는 입장이다 보니 잘 구조화된 학습지가 필수적이거든요. 단계별로 생각을 잘 발전시켜야 최종 산출물인 한 편의 글이 잘 나오게 되니까요.

물론 에세이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고등정신능력을 풀가동해서 사고하게 되긴 하긴 하고, 게다가 강의 일변도의 수업이 아닌 모둠활동 위주의 수업이기에 위에서 인용한 선생님의 비판이 딱 맞아떨어지기 어려운 지점이 분명 있긴 하지만, 어찌 보면, 지나치게 상세하고 빽빽한 학습지를 고안하면서 학생들이 중간중간 학습하는 내용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해볼 기회를 알게 모르게 빼앗고 있는지도 몰라요.

의대생들의 학습법 유튜브를 본 적이 있는데요, 선행학습을 통한 예습만 강조되고 있는 교육시장의 실태를 언급하고 복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백지 복습법을 추천하더라고요. 책과 공책 학습지 등을 참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백지 위에 학습한 내용을 복기하여 쓰는 것이죠. 너무 좋은 학습 방법인 것 같아서 저도 저희 자녀들에게 학원에 안 다니는 대신 매일매일 백지 복습은 반드시 하도록 하고 있어요.

학습내용은 마치 나선형처럼 구조화되어 있어서, 이전 학습 내용의 토대 위에 새로운 내용을 심화, 확장하여 학습하도록 조직되어 있거든요. 너무 당연한 얘기죠. 덧셈 뺄셈을 잘 익혀야 곱셉 나눗셈도 할 수 있고 방정식도 배울 수 있게 될 테니까요.

큰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교에서 배움 공책을 작성하도록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아이는 학교에서 1차 복습, 집에서 2차 복습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죠.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4. 기기 사용 최소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기기를 활용하는 빈도와 절대 시간을 줄이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리콘밸리에서는 자녀들에게 절대 스마트폰을 쥐어주지 않는다고 하죠. 스마트폰을 일찍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책을 읽고 생각을 쓰며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IT 시대를 선도하는 리더가 되는 길이랍니다.

게다가, 기기 사용은 때로는[생각보다 많은 순간!] 매우 비효율적이에요. 탭의 메모장에 필기하는 상황을 떠올려볼까요? 예쁘게 필기하기 위해 펜 타입을 누르고,  글꼴과 크기를 선택하고, 색깔을 고르고, 영문/한글을 선택하고, 잘못 쓴 내용을 지우기 위해 지우개 탭을 누르고, 지우개 크기를 고르고, 다시 펜을 클릭하기를 반복해 가며 필기하는 학생을 지켜보신 적 있으신가요? 정말 복장 터져요. 그냥 연필로 쓰고, 지우고, 펜을 바꿔가며 필기하는 것이 훨씬 빨라요. 정말이에요, 한 번 해보세요.

게다가 기기를 사용하며 전자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인체에 해롭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죠.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하고요. 저도 어느 때부턴가 잠잘 때 휴대폰을 머리맡에 다시 두기 시작했는데 경각심이 드네요^^;; 물론,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비행기 모드로 바꿔두긴 하지만요!

아무튼,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서는 자녀 및 학생들이 기기 사용을 반드시 해야 하는 순간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하시고 최소한의 기기 사용을 허용하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제가 지금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꼭 필요한 기기 사용이라고 해둘게요 ㅎㅎ)


5. 결론


이제까지 기초학력을 향상하기 위한 방법들을 작성해 보았어요. 꼭 선생님[혹은 부모님]이 아니실지라도, 우리는 평생 배우며 살아가야 하니까 나의 학습 및 학습력에 대해 반추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내가 좋은 학습자가 되면 누군가에게 좋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요.

 

 

 

202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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