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채점이 종료된 기쁨에, 성찰적 에세이 쓰기 수업 후기를 간략히 남긴다.
1. 성찰적 에세이 쓰기 수업의 장점
1.1. 아이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함
이것은 설문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좀 더 면밀한 분석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기에 아직까지 속단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학생이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고 해결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이성적 비판적 사고를 통한 문제해결적 사고를 경험하도록 한다. 이러한 작업은 문제상황에 매몰되어 한없는 우울감의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사고의 선순환의 구조를 시작하도록 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실제로 어떤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남긴 것으로 인해 친구들에게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은 경험을 떠올리며 한국사회의 집단주의 현상을 냉철히 분석하고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했고, 또 어떤 학생은 앞니가 벌어져 친구들에게 놀림당했던 경험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 후 (교사인 내가 언급해 준... 음하하!)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인용하며 자신의 치열을 자신만의 매력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글을 썼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친구의 운동능력이나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지닐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렇게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사회문화적 현상을 고찰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1.2. 사교육의 영향에서 다소 자유로움
수행평가의 과정이 진행되기 전 완성된 원고를 들고 나타난 아이들은 내용이나 구성 면에서 중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사교육에 의존하는 아이들을 차별한 결과가 결코 아니다. 일단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평가자로서 교사가 요구하는 내용 및 구성면의 피드백 내용을 최종 원고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미 '훌륭하신' 학원 선생님께서 대체로 써주신 '아름다운' 원고를(나는 빈정거리고 있지 않다. 아이들의 학원 선생님에 대한 충성심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갈아엎어야 할지--본인이 땀 흘려 쓴 내용이 아니기에 더더욱--알 수 없을 것이고, 이를 선생님께 다시 써달라고 부탁드리기도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획득한 '정말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는 사교육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데, 초안을 영작하는 작업에 돌입하기 전에 나의 피드백을 충실히 반영하여 개요를 수정함으로써 글의 뼈대를 잘 세웠고, 그 결과 아주 완성도 높은 최종 원고를 제출할 수 있었다. 높은 점수를 획득한 다른 아이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알음알음 받았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없고, 배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교육을 잘 따라가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교육의 도움의 받는 것과, 학교 수업에 충실히 참여하지 않은 채 '사교육에만' 의존하여 학습을 해나가는 것은 다르고, 나는 전자의 경우가 훨씬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성찰적 에세이 작성은 후자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아주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수업-평가였다는 점을 확인하고 기뻤던 것이다.
학원 선생님께서 에세이 작성 지도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여서 빚어진 결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요구한 '이상적인' 에세이 결과물이 지나치게 편중되거나 통제된 수준의 글이어서 이러한 현상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긴 하다.
2. 에세이 평가 도입을 위한 선결 과제
2.1. 채점 과정
채점 과정이 수월해져야만 한다. 교사가 작성한 예시 답안 및 채점 기준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AI가 학생 과제의 과정과 결과를 평가할 수 있다면! 사실 ets에서는 이미 AI 시스템을 개발하여 채점을 실시하고 있고, 채점 결과가 인간 채점관에 비해 더욱 정확하다고 한다.
특히 서논술형 수능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이 시점에, 채점에 드는 비용과 시간, 효율성 전반에 대한 논의는 필수적이다. 수능이 바뀌면 학교 수업-평가 내용이 바뀔 수밖에 없고, 몇 날며칠 밤을 새야 채점을 완료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은 일선 학교에 도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2.2. 교사 재교육
교사의 수준이 교육의 질을 좌우한다. 교사가 에세이를 쓸 수 있고, 가르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어야 에세이 수업이 학교에서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선다형 문항으로 훈련받으며 자라온 세대이기에 재교육이 필수적이다.
3. 결론
글쓰기가 논리적 사고력을 향상하는 좋은 방법이고, 글쓰기 행위 자체가 회복과 치유의 계기가 된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입증한 바 있다. 너무도 짧고 단편적이며 파편화된 사고에 길들여진 이 세대의 아이들에게, 또한 코로나를 겪으며 마음이 병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성찰적 에세이 쓰기는, 더 건강하고 밝은 미래 사회를 위해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낼 있을지도 모른다.
202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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