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이 높은 아이가 성공한다는 것을 내 눈으로 학교에서 관찰한 바를 바탕으로 확언할 수는 없다.
https://youtu.be/RovxZBbeBb0
다만 수년 전 방영한 ebs 아이의 사생활과 같은 자료에서 도덕성과 학습능력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내용이 나오니 학습능력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가보다 하고 잠시 추측해 볼 법도 하나, 반례들을 찾기도 너무나 쉬운 것이 사실이다.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 전도서 7:15-16
게다가 인생은 원체 허망한 것이기에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기에도 힘이 잘 안 실리는 듯하다.
그저, 도덕성이 높은 아이가 그래도 잘 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기왕 한평생 사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삶을 나와 타인이 함께 모두 살게 되었으면, 하는 (원대한?) 소망을 가져 보는 것이다.
1. 도덕성에 대한 단상을 촉발한 슬픔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여 한 시간 내내 촉각을 곤두세웠어야 하는 학급에 하필이면 오늘도 시감 배정이 되었다. 마음이 편치 않은 채 입실하여 좌석 배치도를 점검하는 등 시감 업무를 시작했는데, 지난 중간고사 때보다 더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 있었다. B학생 쪽으로 지속적으로 시험지를 들어 올리거나 답안지를 책상 모서리 쪽으로 (지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옮겨 놓았던 A학생이, 이번에는 다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지난번 확인하고 보고했던 그 이름과도 달랐다. 그 이름 자리에는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1.1. 개인의 타락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내가 해당 학년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없어서 아는(각인된) 이름이 거의 없었기에 이름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게다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A학생은 오늘 앉은자리(4 분단)가 아닌 자리(2 분단)에 앉아 있었고, 주의를 주느라 계속 왔다 갔다 한 동선으로 인해 위치를 잘못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도 매우 낮았다. 학적변동이 있는 학생의 자리는 비워두고 번호순으로 앉았기에 학생들의 고정 자리가 대거 변경되었을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가장 합리적인 추론은, A학생이 B학생과의 부정행위를 시도하기 위해 C학생(내가 보고했던 이름의 원래 주인인 학생)과 자리를 바꾸어 중간고사 해당 과목을 응시했을 가능성이다.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나는 아주 많이 슬퍼졌다.
그리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이 사실을 교무에 고지하고, 대리 응시가 사실로 밝혀지면, 당장 학교 차원에서는 해당 학생들의 중간고사 해당 과목 점수는 0점 처리가 될 것이고, 전교생의 해당 과목 점수 산출이 다시 이루어져야 하는 번거로움과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이 된다.
1.2. 공동체의 도덕적 타락
그런데 그렇다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다른 학생들은 어째서 이를 묵인하였던 것인가. 유독 해당하는 학년은 고사 중 화장실에 가 몰래 지니고 있던 휴대전화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한 사실을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일화가 알려지는 등 도덕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할 만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혹은 그러한 아이들이 타 학년에 비해 많이 속해 있는) 집단임을 들어 알고 있었다.
대리 응시가 사실이라면, 다른 학생들은 이를 ‘또 하나의 짓궂은 장난’ 정도로만 여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집단일수록 ‘옳은’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2.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결과
장기적으로 이러한 도덕적 타락 현상이 해당 학생 및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다만 해당하는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도모하고, 대리응시를 감행한 것이 사실이라면) 당장에 최상의 시험 성적을 내기는 어려웠을 것임은 일반적인 추론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부정행위를 도모하는 학생은 계속해서 감독교사의 눈치를 살펴가며 부정행위를 할 기회를 노리느라 시험문제에 집중을 하기 어려워진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여 집중도가 낮아질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문제풀이에 집중할 시간이 적어진다.
너의 이름이 C가 아니고 A니? 지난번에는 C학생 자리에 앉아 있었잖아. 일단은 시험 보세요.
이후 C학생은 시험을 응시하는 내내 감독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나를 열 번도 넘게 바라보았다. 지난번 5분 남았음을 알리는 안내가 있은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몇 분 남았는지 물어보고, 수없이 답안지의 위치를 조정하거나 문제지를 펄럭이던 A학생은 미동도 않고 시험을 응시하였다. 종료령이 울리고 답안지를 걷어오는 B학생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결론
이 모든 것이 나의 착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C학생은 시간이 정말 계속 궁금했고, B학생은 끝까지 문제를 힘겹게 푸느라 손이 떨리고, A학생은 유독 집중이잘 되는 날이었어서, 나의 슬픈 예감이 모두 틀리면 정말 다행일 것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여기에는 개인 및 공동체의 타락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는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가 있다. 한두 번의 시험이 등급을, 학교를, 봉급을, 너무나 많은 것을 좌우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구조적 악이 존재한다고 해서 규칙을 지켜야 할 의무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내가 걱정하는 바가 사실일진대,) 학생들의 선택을 통한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서논술형 평가에 대한 고민이 확장되어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절실히 느낀다.
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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