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잔소리만 하던 학급 아이들과 함께 왁자지껄 웃을 일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웃어느냐면요, 제가 실수를 좀 했거든요. 들어보시렵니까?
본문에 대한 T/F 질문의 답을 확인하는 중이었습니다.
본문에 나오지 않은 내용에 대한 문장이어서 답을 일단은 'F'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부연했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알지 못하는 사실이므로 '거짓'이라기보다는 '알 수 없음'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요. 그러면서 '알 수 없음'이라는 의미의 영단어 Unknown을 옆에 적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킥킥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뭘 잘못 썼나? 제가 화면에 띄워놓고 작성하던 파일을 보고 저도 마구 웃었습니다.
혹시 상상이 되시나요?
F 옆에 Unknown...
학생들의 눈에는 다음과 같이 앞의 두 글자만 확대되어 보였겠지요.
F Unknown
욕설이 자동으로 연상되었을 것이고요...;;
어쩌겠습니까. '아이쿠, 미안합니다.' 하며 황급히 F를 지우고는 저도 깔깔거리며 웃었죠.
대결 구도에서 공동체적 구도로
그런데 이 순간, 마법이 풀리듯 놀라운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늘 (욕설이나 비아냥거림이나 잡담 등 집단의 문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을) 못하게 막아서던
통제하는 사람과 억눌리기 싫어하는 사람의 대결 구도에서,
실수하는 사람과 이를 발견한 사람이 모두 함께 웃는 공동체적 구도로 바뀐 것입니다.
비록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을지라도, 함께 웃는 웃음은 관계 회복과 새로운 관계 형성의 아주 좋은 신호입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좋아야[적어도 나쁘지는 않아야] 배움이 수월하게 일어나니까요.
실수와 함께 웃기의 힘
그나저나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때때로 실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 읽었는데, 어딘가 허점이 있고, 어설프고, 부족한 면이 보이는 사람은, 공격이나 정복의 대상이라기보다 친밀감과 동질감의 대상이 된다더니, 정말로 그런가 봅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그래서 정서적 안정감이 인지적 학습에 최적화된 상태를 만들 수 있도록 별 것 아닌 실수는 좀 더 해도 괜찮겠습니다. (물론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실수나 평가와 같은 중대한 실수 말고요)
배움이 더 잘 일어날 수 있다면야, 그리고 함께 좀 더 신나게 웃는 교실이 된다면야!
교사로서 학생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일은 참 기분이 좋거든요. 아마 학생들도 그렇겠지요.
내일 당장 회의에서, 가족과, 친구와 식료품점 점원분과 함께, 왁자지껄 한 바탕 함께 웃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평안한 밤과 새 날 맞이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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