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극 말하기 수행평가를 준비하면서 동료 선생님들과 고민한 지점은 다음의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다른 아이들이 대본을 열심히 짜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냥 무임승차를 해버리는 상황
둘쨰, 아무런 소품 없이 건성으로 발표에 임하는 상황
셋째, 작은 소리로 책 읽듯이 대사를 말하여 청중에게 대사 전달이 잘 이루지지 않는 상황
본문 진도를 나가면서 자투리 5~10분 정도 틈틈이 대본작성 및 연습 시간을 부여해왔기에, 소품 준비나 연기 연습에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동료 선생님들과 협의하여 낸 결론은, 우리가 원하는 바를 채점기준표에 포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2023년과 2024년의 채점기준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먼저 2023년도 채점기준표는 역할극이라기보다 시각자료를 가지고 정보를 전달하는 모둠별 발표의 채점기준표에 가깝게 보입니다. 다른 모둠원이 써주는 대본과 만들어 준 ppt를 가지고 무임승차 하는 학생도, 청중만 바라보고 정작 대사를 주고 받는 모둠원과이 상호작용이나 대사의 의미를 소품이나 몸짓, 표정연기 등을 통해 실감나게 표현하지 않은 학생도 만점을 획득할 수 있는 평가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수행 수준이 높지 않아도 채점기준에 따라 변별을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음은 2024년도 채점기준표입니다.
먼저, 대본 필사 항목이 포함되어 있기에, 지시문을 포함한 모든 모둠원의 대사가 자신의 유인물에 잘 적혀 있어야만 합니다. 무임승차 하는 학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대본 작성 작업에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평가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준비도 항목에 ppt가 아닌 소품 및 배역 표시를 갖출 것을 명시하였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잘린 로봇 팔을 대체할 빗자루나 농구공을 소품으로 준비하기도 하고, 인공눈물을 넣어 눈물 연기를 펼치거나 일인다역을 맡은 경우 역할 표시를 앞뒤로 돌려가며 연기하는 등 저마다 작지만 의미있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1점의 차이가, 역할극을 한층 역할극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지요.
셋째, 연기력을 평가요소에 넣은 결과, 학생들은 책을 읽듯 말하는 대신 호소하고, 호통치고, 고뇌나 기쁨, 혹은 안도감에 싸인 인물의 감정을 실감나게 전달하느라 애썼습니다.
다음은 역할극 수업을 마친 학생들의 후기입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학생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평가 루브릭을 잘 짜는 것은 학생 수행 수준뿐만 아니라 배움의 과정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인 것 같습니다.
학생 저마다의 배움이 즐겁고 의미있어서, 학교 오는 일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평안한 밤과 복된 새 날 맞이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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