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자극적이군. 곧 해명이 시작된다.)
#1. 중독자
아무리 고쳐 써도 세상에 완벽한 글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는 다만 글을 손에서 '떠나보낼'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렇다, 무릎을 치며 공감을 했다. 그런데 어제에 이어 오늘도 떠나보낼 시기를 놓쳤다. 더는 못하겠다고 뒷목이 파업을 대차게 선언하고서야 문서의 저장 버튼을 한 번 더 누르고는, 씻고 와 티스토리 로그인을 했다.
그러고도 작성하던 문서를 이모저모 읽어보며 고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한글 창을 닫았다.
이런, 또.
방금은 엑셀 창도 닫았다.
충실성을 넘어선 어떤 증상임이 분명하다.
#2. 발견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것들이 자꾸 보인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도 그렇고,
글을 쓸 때도 그렇고,
가족, 친구나 연인과 교제할 때도 그렇다.
세상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발견의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득 차있다.
다음은 오늘 종일 보고서를 쓰느라 수업 분석을 마저 하다가 발견한 내용이자, 오늘 내가 남기기로 결심한 기록의 주된 내용이다. (엑셀파일을 또다시 열뻔 하다가 근거자료인 종이를 폈다.)
나에게 영어수업은 도전의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고난과 역경에 부딪쳐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 계기가 되어준 수업이기 때문이다.
실은, 지난 번에 해당 답변을 읽고는 흥, 했었다. 학번과 이름을 적어 넣게 되어 있고, 세특의 근거자료로 쓰인다는 사실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수업 성찰록에는 수업이나 교사에 대해 뚜렷한 불만이 있지 않고서야 대체로 긍정적이고 조금은 과장된 아름다운 말들을 써넣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친구는 모둠활동 중 친구에게 심한 욕설을 지도받은 직후에 또다시 하다가 나에게 호되게 지도를 받은 전력이 있기에 더더욱, (어제 그 친구들 중 하나가 아니다. ... ^^; ... -_-^ ... ㅜㅜ ) 교사인 나에게 정중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중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오늘(아직 나는 토요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같은 내용을 세 번째로 살펴보면서, 새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영어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과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문항에 대해 학생이 다음과 같이 쓴 것이었다.
수업시간 중 선생님이 문장 발표를 시키셔서 큰 목소리로 발표하고 문장을 읽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 발표가 끝나고 들리는 친구들의 박수소리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이 친구가 발표를 하고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학생이, 그 박수 소리를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위를 다시 보니, '더 나은 사람'이라는 말에 담긴 진심이 느껴졌고, 뒤이어 1학기 후반부터 개학을 한 이후인 지금까지 그 친구가 보인, 수업시간의 진중한 태도들이 떠올랐다.
살짝 울컥하려던 참에, 내가 호되게 혼을 낸 지 얼마간 지난 어느 날 출근 길 버스 바로 뒷자리에서 친구와 아주 찰진 욕설을 주고 받던 청소년이, 알고보니 그 학생이어서 애써 모른 척 했던 기억도 나서 원 제목의 단어를 고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바로,
#3. 미소
또다시 기억하고 또 마음에 새겨야 할 점은, 단면만 보고 전체를, 그리고 과거를 보고 미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람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지만, 변화해 간다. 동시에, 참으로 안 바뀐다. 그러나 결국 변화한다. 학생이 말하는 고난과 역경은 나에게 혼난 일과 버스에서 하필 나의 뒷자리에 앉았던 일을 포함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학생이 또박또박 써넣은 글자들 좌우 위 아래에 그려진 코끼리 그림이며 눈들은, 어쩌면 나를 향한 비웃음일 수도 있고, 성찰과 머뭇거림의 흔적일 수도 있다. 학생은 앞으로도 욕설을 사용할 수도 있고, 더 심한 욕설을 배울 수도 있고, 아니면 기복을 거쳐가며 마침내, 점차 욕설을 덜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수 많은 가능성을 상상하며,
미소로 글을 마무리 한다.
밤하늘의 별이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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