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평가에 대한 구두 피드백을 받아 보았다. 시간이나 난도가 적정했는지 등 지난 중간평가 때와 비슷한 질문을 하며 학생들에게 수업-평가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불만은 학원에 열심히 다니는 아이들이 주로 제기했고, 둘째, 시험 대비가 어려우니 교과서 위주의 수업과 평가를 진행해달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반면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충실히 공부하여 (정기고사에 비해 반영비율이 월등히 높은) 수행평가도 만점을 획득하고--전교에 수행평가 전체 만점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지필평가도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은 A학생을 포함한 수업 충실파 학생들은 이러한 불만에 동조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으며, 오히려 논술형 답안을 지난 중간평가에 비해 잘 작성하여 점수가 향상된 점 등에 대해 성취감 및 만족감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금요일과 월요일에 실시할 수업성찰록 작성을 통해 더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무쪼록 수업-평가에 대한 주요 민원과 나의 대응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교과서 위주 수업에 대한 요구
(학원 기출 문제가 제공되지 않는) 외부지문이 많아 시험이 너무 어렵게 여겨졌다는 불만의 목소리에 대해 나는 학생들에게 반문했다. “얘들아, 외부지문은 어떤 식으로 공부하면 되는 걸까?”
시험 잘 본 학생이 대답했다.
“학습지를 여러 번 읽어보며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바로 그거죠.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죠.”
2. 문항 비중에 대한 불만
글의 구조에 대해 학습하고 선배들이 쓴 글의 구조를 분석하는 수업 내용 관련 문항이 너무 많이 나와서 당혹스러웠다는 (학원교재를 바탕으로 교과서 기출문제 위주로 지필평가를 준비한) 아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세차별 지문를 3주, 글의 구조 분석을 1주, 교과서를 1주 정도 배웠으면 시험 문제 분량도 이에 대체로 부합하게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게다가 나는 짝꿍 선생님과의 합의를 통해 글의 구조 분석 내용이 고사에 출제될 것임을 아주 명시적으로, 공공연하게, 반복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3. 익숙한 문법 문제에 대한 향수
“이해하고 적용하는 문제 대신 문법 문항을 좀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한 학생에 대해,
“문법은 잘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지 문법 지식 습득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문법 문항 출제는 제 교육 방침에 맞지 않아요.”
라고 답하자 비아냥거리는 듯이 입을 삐죽거리던 아이의 입은, 수의 일치, 시제 일치 등 기본적 문법 사항 오류가 네 군데 이상 발견되어 논술형 평가에서 1점 감점이 된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쑥 들어갔다.
4. 결론
평가에 대한 구두 평가의 말미에 나는 학생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학원 선생님들께서는 우리 학습을 도와주시는 감사한 분들인 것은 확실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그 효율성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이 필요하다고.
공교육과 사교육이 각각의 본질적 기능과 상호보완적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이 깊은 밤이다.
2023.07.11.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먼 자들의... 교육? (150) | 2024.01.22 |
---|---|
대중문화를 통해 가족을 탐구하기 수업 나눔 (11) | 2024.01.22 |
도덕성에 대하여 (12) | 2024.01.22 |
성찰적 에세이 쓰기 수업 후기 (feat. 정신 승리) (12) | 2024.01.22 |
어떤 교실의 기초학력 필살기 (10) | 2024.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