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조지프 르두 <불안>을 읽으며 사회정서학습의 의미를 고민하다

글을써보려는사람 2025. 1. 1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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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인 교사로서, 사회정서학습 방안을 통한 정서 교육을 고민하며,  조지프 르두의 <불안>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학습에 대한 내용을 발견하여 기록을 남기고자 합니다. 
 
 

정서와 학습 효과

 

정서가 유발된 상황에서 학습이 기억 형성에 더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꼭 유발된 정서적 느낌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 조지프 르두 <불안> 192면

 
 
놀람, 관심, 기쁨, 분노, 공포와 같은 일차적 정서, 그리고 죄책감, 당혹감, 공감 등의 이차적 정서를 포함한 정서가 유발된 상황에서 학습 내용이 장기 기억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군요. 그야말로 유레카! 입니다. 
그냥 기계적으로 왕의 계보나 주기율표를 암기하는 등 단편적으로 학습하는 것보다 이성을 풀가동하여 맥락을 살펴가며 종합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효과적이겠고, 인지적으로 효과적인 학습에 머무는 것보다 마음이 움직인(정서가 촉발된) 상태에서 학습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겠군요.
 
 
 
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문학작품의 위력을 다시금 발견합니다. 주인공을 따라 울고 웃는 동안 나의 내면의 깊은 상처가 요동치듯 올라왔다가 어느새 스르르 해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속상하게 했던 누군가에 대해 깊은 연민이 느껴지게 되기도 하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나의 실수를 깨닫고 행동의 변화를 다짐하기도 하는 등, 정서가 촉발된 상태가 되니까요.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의식이 활성화된 상태일 테고요.
한편 성경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인간의 타락, 그리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구약의 '이야기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 사역, 십자가 사건과 부활 승천, 교회의 태동, 그리고 교회와 성도의 사명에 대한) 신약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데에는 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의식에 관하여

 
한편 이렇게 주변 세계에 대해 알아차리고 판단하도록 하는 '의식'은 인간 고유의 특성입니다. 조지프 르두의 <불안>에서 의식과 관련된 부분을 정리한 후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의식은 생물 의식과 정신적 상태 의식의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생물 의식(creature aconsciousness)은 잠들거나, 마취되거나, 코마 상태(혼수 상태)에 있지 않은 상태로, 깨어 있고, 경계하며, 주변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동물에 대해서도 '의식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한편 정신적 상태 의식(mental state consciousness)은 다릅니다. 생물 의식과 마찬가지로 깨어 있고 경계하며, 감각 자극에 반응하고, 복잡한 행동을 수행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상태를 지칭하지만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정신적 상태 의식은 상태 의식과 차이가 납니다.
 
1. 자극의 현존을 자각한다.
2.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
3. 감각하고, 행동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기 자신임을 자각한다.
 
르네 데카르트는 이러한 의식에 대해 이성적 사고, 내적 자각, 자유 의지와 함께 인간에게 주어진 특성으로, 동물에게는 결여된 상태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창세기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 창세기 2:7

 
그리고 이렇게 사람에게 '의식'을 부여하신 것이, 하나님을 닮은 형상을 지으신 것이라고 하네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창세기 1:26~27

 
 
조지프 르두의 <불안>에도 인간의 '의식'이 진화론적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나는 다윈이 한 가지 점에 있어서는 틀렸다고 본다. 바로 인간이 동물 조상으로부터 의식적 느낌을 물려받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느낌을(단지 반응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의식적 느낌을) 부호화한 뇌 회로를 물려받았어야 한다.
공포 같은 정서가 선천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 중 하나는, 인간이 정서를 경험하는 방식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발밑의 뱀, 강도, 엘리베이터, 높은 곳, 시험,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상황, 상한 음식, 탈수, 저체온증, 생식 실패, 친구를 잃는 일, 외계인 납치, 재정적 불안, 불합격, 의미 있고 도덕적인 삶을 살지 못할 가능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에 공포를 느낀다. 이 사실은 이 모든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동물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공포(또는 불안)의 단일한 뇌 회로가 있다는 생각을 배제한다.
- 조지프 르두 <불안> 195~196면

 
 
인간은 동물과 달리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정서를 경험하기 때문에, 다윈이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이 공포의 느낌을 부호화한 단일한 뇌 회로를 동물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았다고 가정하거나, 동물 또한 쾌락과 고통을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의식'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고의 과정이 가능하도록 의식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정리와 결론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와 볼까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의식'입니다. 그런데 교사로서 교실에서 아이들을(혹은 주변에서, 혹은 인터넷 창에서 세상을...) 살펴보면, 너무 많은 것들에 너무 많은 이들의 의식이 마비 되어, '의식'이 충분히 명민하게 작동하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를 어찌하나요. 저는 탄식합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의 저를 통한 세상에 대한 탄식이기를 간절히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정서가 촉발된 상태에서 효과적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조지프 르두의 말에, 귀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공부해야겠습니다. 계속.
 
 
 
아침부터 흐리더니 눈이 오네요. 세상 근심 설움, 모든 부정과 불의가 눈 같이 희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복되고 평안한 오후 시간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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