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피아를 구분하느라 온 정신을 집중하며 치열한 한 때를 보내다 보니, 남은 것은 떳떳함도, 성취감도, 통쾌함도 아닌 바로 허망함임을 깨달을 때의 어떤 느낌입니다. 이긴 사람은 없고 상처받은 사람만 있습니다. 재물, 명예, 권력 등 어떤 것을 지키려고 싸우거나 무언가 쟁취하려고 애쓴 뒤에는 대개 그렇습니다. 골리앗의 머리를 베어 들고 있는 다윗의 표정에도 알 수 없는 씁쓸한 패배감이 서려있는 듯 보입니다. (카라바조는 다윗의 얼굴에도, 골리앗의 얼굴에도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하지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는 나르시수스와 달리, 카라바조의 나르시수스는 슬픔에 잠긴 것만 같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아도 칭찬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