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85

레프 톨스토이 <주인과 일꾼> 독서 일기 #2 - 독서의 즐거움

1.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 수업 중 를 함께 읽고 있다. 주인공이 사막을 걷다가 죽어가는 사람의 무리를 발견하는 부분의 묘사를 읽는데, 분명 시작할 때에는 삼삼오오 떠들더니, 어느새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이야기에 경청하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조용히 해.'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 전개가 궁금해진 아이들이 알아서 '조용히' 듣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조용해지던 아이들의 모습은, 을 읽는 나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도대체 니키타의 말을 들어 먹을 생각은 않고 고집을 피우며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길을 다시 나서 계속 길을 잃게 되고, 심지어 혼자 살아남겠다고 얼어 죽기 직전의 일꾼은 내팽개치고 혼자 말을 타고 가버리는 주인의 모습에 분개하는 동안 어느새 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와..

도서 2024.11.27

톨스토이 <주인과 일꾼> 독서 일기 - 누가 니키타를 주정뱅이로 만들었을까?

톨스토이의 단편 은 뒤에 수록되어 있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의 '일꾼' 니키타는 50세의 농부입니다. 근면성실하고, 일 솜씨가 좋고, 힘도 있고, 친절하며, 유쾌한 성격을 지녔고, 정직하며, 동물과 교감도 잘해서 말을 포함한 가축을 잘 부립니다. 술만 취하지 않으면요. (1년에 두어 번이라고 본인은 우기고 싶겠지만 실은) 제법 자주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는데, 안타깝게도 술버릇이 아주 고약합니다. 아내의 옷상자를 부수고, 값나가는 옷이며 속옷을 산산조각 낸다고 하네요. 술이 깨면 아내에게 품삯을 모두 갖다 바치고, 푸대접을 받으며, 집에 들어와 살라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 가장입니다. 집에서만 새는 바가지가 아니었던지, 술만 마셨다 하면 소란을 피우거나 시비를 걸며 불화의 씨앗이 되는 바람에..

도서 2024.11.25

시련을 대함

1. 의미 전환 배우자를 잃은 괴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환자에게 빅터 프랭클은 배우자보다 자신이 먼저 죽었을 경우 배우자가 겪었을 괴로움을 떠올려 보도록 하며, 배우자를 위해 애도하는 시련을 겪는 중이라고 말해준다. 환자의 현재 시련의 의미를 상기시킴으로써 시련을 대하는 환자의 시각의 전환을 이끌어낸다. 물살을 틀어 물줄기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진다면, 상황이 주는 무게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 나도 그랬던 것 같다. 하나님이 나의 지경을 넓히시는 중이라고 생각했고, 또 어려운 순간들을 잘 이겨내고 있는 신앙인으로서 딸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감사할 수 있었다. 나의 메시지를 읽은 아버지가 우셨을 것임..

도서 2024.11.19

<우리가 본 것> 독서 일기 - 못 볼 것을 봐야 하는 사람들

나는 공포영화를 싫어한다. 잔상이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하나 베르부츠의 은 그 어떤 공포물보다 무서운 책이다. 소설이지만, 실제 상업용 콘텐츠의 감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어낸 현실의 이야기이고, 누군가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정말 끔찍하다.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 콘텐츠가 유해한지의 여부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걸러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제 3세계 노동자들, 즉 '인간지능'이 포르노, 자해, 살인 등 폭력적인 콘텐츠부터 문화적 차별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되어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고 해당 영상을 삭제하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은 이러한 유해 게시물 삭제 노동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

도서 2024.11.13

읽다 만 <프랑켄슈타인>, 나를 위로해주다 만 메리 셸리

간밤에는 모기 네 마리를 연달아 잡고는 잠이 깨버렸다. 마음이 방황에 또 방황을 하다가, 지금 시간들을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 어쩌면 하늘의 뜻일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고, 마침내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도 영 마음이 어지러워 메리 셸리의 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각별했다. 배를 타고 떠나는 모험을 앞둔 화자가 누이 동생에게 보낸 네 통의 편지 부분은 특히 그러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데 다정한 친구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느낌이랄까.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지만, 봄이 되면 날씨가 좋아지겠지. 그래도 올해는 봄이 유난히 일찍 온다고 하는구나. 아마 항해를 예상보다 일찍 떠날지도 모르겠어. 어떤 일도 성급하게 하지는 않으마. 다른 사람들의 안전이 내 손에 달려 ..

도서 2024.11.12

<죽이고 싶은 아이 2> 독서 일기 #2 - 밥과 친구와 선물

#1. 밥주연은 이끌리듯 죽은 친구, 서은의 집에 간다. 그리고 왜 왔느냐며 돌려 보내려는 서은 엄마에게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는 배가 고파 죽을 것만 같아도 먹을 수 없던 밥이, 왜 서은의 집에서 생각났을까. 밥을 먹는 행위는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생명을 갈구하는 행위이다. 밥과 생명의 놀라운 연관성은 요리 동아리에서도 확인해왔다. 요리 동아리에서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를 해서 나눠먹고, 뒷정리를 위해 협동하는 모든 과정에 제법 성실하게 임해온 몇몇 아이들이, 알고 보니 일반 교과 시간은 물론이고 학급 활동 등 학교 생활 전반에서 지극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담임 선생님과 다른 교과 선생님들을 통해 알고 얼마 전에도 적잖이 놀랐다. 요리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먹는 일은 곧..

도서 2024.11.09

<죽이고 싶은 아이 2>는 청소년 소설이 아닌 청소년 소설이다

#1. 작가의 작중 인물에 대한, 작가에 대한 나의 책임감 책 속의 인물에 대한 책임을 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어느 중학생의 질문을 계기로 이꽃님 작가는 집필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책임감이라는 말은 늘 어렵다. 맡은 역할과 임무에 대한 책임감과, 타인과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감 등, 비스듬해진 몸과 마음의 자세를 고치게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에 대한 서평도 못다 완성한 상태에서, 게다가 두 번째 작품을 다 읽지도 못한 상태에서 독서일기를 시작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자세이다. #2. 너무도 무거운 작가의 명령 이꽃님 작가가 작중 인물에 책임을 지는 방식은, 고통을 경감시키거나 피하도록 놔두지 않는 아주 묵직하고 가혹한 방식이다. 친구를 살인했다..

도서 2024.11.08

<생각에 관한 생각> 독서 일기 - 직관 무용론에 대한 감정적 반응

오늘 읽은 21장 '직관 대 공식' 내용은, 업데이트가 필요하게 느껴졌습니다.   1. 카너먼의 직관 무용론 해당 장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인간의 직관보다 알고리즘, 통계 자료, 빅데이터의 정확성이 높으므로 직관을 무시하지는 말되 무작정 신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타인의 직관을 무시하지는 말라'는 언급은, 직관 옹호론자들의 비난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합리적인 지표와 객관적 수치를 통한 판단이 인간의 직관에 의존하기 쉬운 총체적 평가를 능가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글의 시작이자 결론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기에서 '무시할 만하지 않은'(저는 이 말이 영 불편하게 여겨지는가 봅니다) 직관이라 함은, 충분하고 종합적인 판단 절차를 거친 상태의 직관을 ..

도서 2024.11.07

<생각에 관한 생각> 독서 일기 - 무지함을 인정할 용기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우리의 직관이 틀릴 수 있고, 너무도 명백해 보이는 증거도 때로는 타당한 근거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니얼 카너먼은 에서 '타당성 착각'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입증한다.      1. 무지에 대한 무지장교 훈련을 받을 후보들을 평가하는 작업에서 동료와 함께 '누가 책임자 역할을 하는지, 누가 지도자 역할을 하려다 퇴짜를 맞는지, 각 군인은 팀 전체에 어떤 식으로 협조하는지' 기록하며 '완고한 사람, 고분고분한 사람, 거만한 사람, 인내하는 사람, 성마른 사람, 집요한 사람, 잘 포기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장교 훈련 후보로서의 적합성을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호 검증을 거친 관찰 결과와 실제 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의 수행 정도를 추..

도서 2024.11.06

<생각에 관한 생각> 독서 일기 - 내 그럴 줄 알았지

대니얼 카너먼의 3부 '과신(Overconfidence)'에는 사후(事後) 판단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1. 사후 판단의 개념과 예시 우리들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할 확률에 대해 자신이 내린 이전의 판단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긴가민가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자신의 추측이 맞으면 분명히 그 일이 일어날 줄 알았노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예상이 빗나가면 자신이 과거에 가졌던 확신의 정도를 매우 낮게 기억하거나 심지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편향된 사고에 대니얼 카너먼은 '사후 판단'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후 판단의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줄 알았어. 그 모임은 회원이 점점 늘어날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 2. 사후 판단의 재생산 과정 직관..

도서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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