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78

<생각에 관한 생각> 독서 일기 - 직관 무용론에 대한 감정적 반응

오늘 읽은 21장 '직관 대 공식' 내용은, 업데이트가 필요하게 느껴졌습니다.   1. 카너먼의 직관 무용론 해당 장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인간의 직관보다 알고리즘, 통계 자료, 빅데이터의 정확성이 높으므로 직관을 무시하지는 말되 무작정 신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타인의 직관을 무시하지는 말라'는 언급은, 직관 옹호론자들의 비난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합리적인 지표와 객관적 수치를 통한 판단이 인간의 직관에 의존하기 쉬운 총체적 평가를 능가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글의 시작이자 결론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기에서 '무시할 만하지 않은'(저는 이 말이 영 불편하게 여겨지는가 봅니다) 직관이라 함은, 충분하고 종합적인 판단 절차를 거친 상태의 직관을 ..

도서 2024.11.07

<생각에 관한 생각> 독서 일기 - 무지함을 인정할 용기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우리의 직관이 틀릴 수 있고, 너무도 명백해 보이는 증거도 때로는 타당한 근거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니얼 카너먼은 에서 '타당성 착각'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입증한다.      1. 무지에 대한 무지장교 훈련을 받을 후보들을 평가하는 작업에서 동료와 함께 '누가 책임자 역할을 하는지, 누가 지도자 역할을 하려다 퇴짜를 맞는지, 각 군인은 팀 전체에 어떤 식으로 협조하는지' 기록하며 '완고한 사람, 고분고분한 사람, 거만한 사람, 인내하는 사람, 성마른 사람, 집요한 사람, 잘 포기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장교 훈련 후보로서의 적합성을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호 검증을 거친 관찰 결과와 실제 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의 수행 정도를 추..

도서 2024.11.06

<생각에 관한 생각> 독서 일기 - 내 그럴 줄 알았지

대니얼 카너먼의 3부 '과신(Overconfidence)'에는 사후(事後) 판단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1. 사후 판단의 개념과 예시 우리들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할 확률에 대해 자신이 내린 이전의 판단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긴가민가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자신의 추측이 맞으면 분명히 그 일이 일어날 줄 알았노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예상이 빗나가면 자신이 과거에 가졌던 확신의 정도를 매우 낮게 기억하거나 심지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편향된 사고에 대니얼 카너먼은 '사후 판단'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후 판단의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줄 알았어. 그 모임은 회원이 점점 늘어날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 2. 사후 판단의 재생산 과정 직관..

도서 2024.11.05

<똥의 인문학>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독서 일기 #3 - 고통의 역설

#1. 고양이의 주이상스 어제 산책을 하다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고양이의 왼쪽 눈에 무언가 붙어 흔들거리길래 보니 살점이었다. 공격을 당한 모양이었다. 가여운 고양이는 계속해서 앞발로 눈을 비볐다. 얼마나 아플까, 그려면서도 계속 비벼대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도 상처에 간신히 앉은 딱지를 가만 두지 못하고 떼어내기도 하고, 입 속 염증을 자꾸만 혀로 건드리는 등 고통 자체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에서 저자가 언급한, 라캉의 향락(주이상스 jouissance) 개념이 이런 것인가 싶다. 또한 계속 뛰다 보면 어느 순간 근육의 피로가 사라지고 도파민이 분비되어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러너스 하이도 비슷한 류의 작용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

도서 2024.11.04

<독일인의 사랑> 독서 일기 - 사랑에 대한 단상

최근 신앙인으로서 나의 신앙이 위기 상황에 처했음을 느끼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가장 빈번하게 이러한 위기를 순간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흔히 사랑하면 떠올리는 '가슴 떨리고 설레며 갈망하는'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가족을 바라볼 때, 학생이나 동료나 다른 교우들을 바라볼 때, 한 영혼을 바라볼 때 안타까이 여기며 그 영혼을 기뻐하는 마음이 내가 추구하는 사랑의 마음이요, 최근에 내 안에서 찾기가 도통 어렵다고 느껴지는 마음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각종 폭풍우가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통에 사랑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겹게 느껴지기도 한 사정이 나름대로 있기는 하나, 이것이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으므로 핑계할 수 없다. 오랜만에..

도서 2024.11.03

<똥의 인문학> 독서 일기 #2 - 타액의 공유부터 나의 결핍까지

1. 타액의 공유와 공동체성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 마스크가 만들어내는 거리감이 실로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들숨과 날숨을 통해서 서로 공기를 공유하고, 또 서로 침을 튀어가며 말하는 동안 체액을 공유한다. 그러면서 타인이 나의 일부가 되고 내가 타인의 일부가 되는 친밀함이 형성되는 것이다. 마스크 한 겹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만들어내는 정서적 거리감은 물리적 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상상이었다. 에서 비슷한(하지만 훨씬 깊이 있고 학술적인) 구절을 읽고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과 소통할 때 분비물의 교환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쩌면 해로울지도 모를 분비물을 기꺼이 감수하는 과감한 도약을 전제로 한..

도서 2024.11.02

<똥의 인문학> 독서 일기 - 없어지지 않는다

지난 주말 중고서점에서 책 (제목을 훑으며) 쇼핑을 하다가 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몇 장 넘겨 보다가 구입했다.    (나도 경험해 본 일이 없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똥이 비료로 재탄생하지 않는다. 변기 레버를 누르면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배설물은 눈 앞에서 사라진다. 이것은 마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배설물이 거름이 되어 다시 생명으로 이어지는 자원 순환의 연결 과정이, 잘 발달된 하수처리 시스템으로 인해 단절되고, 하수처리와 화학비료 생산이라는 별개의 영역이 되었다. 0에서 1로 넘어가는 과정이 선형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0의 영역과 1의 영역으로 나뉜 것이다.  단절의 시대이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잘못 썼다가 삭제하면 마치 어떤 메시지도 보낸 일이 없는 것처럼 여겨..

도서 2024.10.31

<추의 역사> 완독 인증 - 그림체와 인간의 마음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Op.23 No.4 선율이 귓가에, 머리 속에 맴도는 채로 움베르트 에코 를 일회독했다. 정독한 구간도, 흘려읽기와 발췌독을 겸한 구간도, 그림만 눈으로 훑은 구간도 있지만 그래도 옮긴이의 말이 나오기까지 책장을 한 장씩 모두 넘기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림체와 인간의 마음신기했던 점은 처음 접하는 작품일지라도 그림체만 보고 살바도르 달리인지, 구스타프 클림트인지, 오딜롱 르동인지, 에곤 쉴레인지 알 것 같더라는 점이다. 가랑비에 옷이 조금 젖었는가 보다.또한 읽으면서 깨달은 점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 그림과 말과 행동이 되어 밖으로 표출되어 나온다는 점이다. 탐욕이 가득한 마음에서는 이기적이고 잔혹한 말과 행동이 나오는가 하면, 그리스도를 품은 마음에서는 그리스도의 성품이 ..

도서 2024.10.29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독서 일기 #2 - 말하지 않음의 아름다움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25) 소녀에게는 말이 어렵고 무겁습니다. 킨셀라 부부의 집에 맡겨지던 날, 소녀는 낯선 환경을 묘사할 적당한 말들을 떠올리려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내향적인 성향을 타고났을 수도 있고, 말을 해봤자 받아들여지지 않아 입을 다무는 습관이 생겼을 수도 있고, 아버지의 쉽고 가볍고 아픈 말들로 인해 말이 싫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킨셀라 아저씨는 이런 소녀의 성향을 두고,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는 아이라고 타인에게 말하며, 이런 애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한편 새로운 환경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이불에 실수를 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많아봤자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 나이에..

도서 2024.10.28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독서 일기 #1 - 하지 않으면 좋을 말들

에 이어 클레어 키건의 작품 를 읽었습니다. 키건 소설의 매력은 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다는 점과, 짧은 문장과 문장들 사이에 아주 많은 생각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하지 않으면 좋을 말들'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분석해보려 합니다. 소설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생의 출생을 앞두고 소녀는 한동안 킨셀라 부부의 집에 맡겨집니다. 소녀의 아빠가 엄마의 고향인 해안쪽으로 소녀를 맡기러 운전해 가는 묘사나, 킨셀라 아주머니가 소녀의 엄마의 안부를 묻거나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생일 엄마에 대해 공감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킨셀라 아주머니가 소녀의 외가쪽 친지일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책에는 대화체를 포함하여 인물 사이에 오가는 말들에 대한 소개가 많이 나옵니다. 소녀의 아빠의 입부..

도서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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