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
수업 중 <A Long Walk to Water>를 함께 읽고 있다. 주인공이 사막을 걷다가 죽어가는 사람의 무리를 발견하는 부분의 묘사를 읽는데, 분명 시작할 때에는 삼삼오오 떠들더니, 어느새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이야기에 경청하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조용히 해.'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 전개가 궁금해진 아이들이 알아서 '조용히' 듣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조용해지던 아이들의 모습은, <주인과 일꾼>을 읽는 나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도대체 니키타의 말을 들어 먹을 생각은 않고 고집을 피우며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길을 다시 나서 계속 길을 잃게 되고, 심지어 혼자 살아남겠다고 얼어 죽기 직전의 일꾼은 내팽개치고 혼자 말을 타고 가버리는 주인의 모습에 분개하는 동안 어느새 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와 있다.
몰입은 독서의 즐거움이다.
2. 궁금증으로 인한 숙고
또한 예상치 못한 이야기 전개로 인한 놀라움과 이에 대한 고찰이 깊은 생각을 유도한다.
나는 어느 책이든 읽을 때면, 한참을 읽다가 글의 맨 뒷부분으로 가서 대강의 줄거리 및 결말을 파악한 후에 다시 읽던 부분으로 돌아와 마저 읽어나간다. 결말을 알고 나서 약간은 '안심한(?)' 상태에서 글을 온전히 즐기기를 선호하는 나의 독서 방식이다.
어제 잠시 이야기의 끄트머리로 가 파악한 <주인과 일꾼>의 결말은 주인인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죽고 니키타는 살아남는 '권선징악'의 이야기였다. 공감 능력 떨어지는 바실리가 죄악의 대가를 어떻게 받을지 통쾌한 심정으로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던 나는, 책장을 넘기면서 그야말로 놀라움과 충격을 느꼈다. 이야기 속 반전 때문이었는데, 니키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주인의 희생' 덕분이었던 것이다. 바실리 안드레이치의 심경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요인이 무엇이었을까, 톨스토이가 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실은 졸면서 읽기도 쓰기도 하느라 이 짧고도 충격적인 이야기에 대해 시간을 두고 좀 더 곱씹어보아야 하는 상태이다.)
3. 삶에 대한 고찰
적어도 이렇게 이야기에 대해,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톨스토이가 독자의 삶에 일어나기를 기대했던 변화의 모습에 속할 것 같다. 사업의 확장과 자신의 영향력을 떠올리며 자신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고 결심하던 인물이 어찌하여 죽어가던 하인을 위해 체온을 나눠주는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가 갑자기 변하기도 하는 주위의 인물을 떠올려 보기도 하며, 자기애에 빠져 있는 내 모습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책을 통해 삶을 고찰하는 것이다.
명저를 통해 더욱 많이, 깊이, 오랫동안 느끼게 마련인 것이 또한 독서의 즐거움이리라.
한편 오블완 챌린지에 도전하여 오블완을 완수하는 동안 어느새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이 닉네임 앞에 붙었다. 기쁘고 자랑스러운 별칭이다.
(내일 발레 수행평가 후에도 이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지프 르두 <불안>을 읽기 시작하며, 짧은 메모 (35) | 2024.12.05 |
---|---|
톨스토이 <주인과 일꾼> 독서 일기 - 누가 니키타를 주정뱅이로 만들었을까? (34) | 2024.11.25 |
시련을 대함 (24) | 2024.11.19 |
<우리가 본 것> 독서 일기 - 못 볼 것을 봐야 하는 사람들 (18) | 2024.11.13 |
읽다 만 <프랑켄슈타인>, 나를 위로해주다 만 메리 셸리 (13) | 2024.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