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미완성이 미완성에게

글을써보려는사람 2023. 12. 1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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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있었던 일이다.

시험감독 업무를 하다가, 어느 한 학생에게 눈길이 머물렀다.
너무나 참하고 모범적으로 보이는 외양을 지닌 그 학생은 정말 열심히 시험 문제를 푸는 중이었다. 지우개를 이리 들여다 보고, 저리 들여다보면서 말이다. 어느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지우개를 손가락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한 5분 이상 지우개의 여섯 개 면을 분주히 문지르고 또 문지르더니, 이내 엎드려 버렸다.

나는 학생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못다 학습한 암기 과목 범위의 키워드를 컴퓨터용 사인펜 뚜껑이며 지우개에 빼곡히 써놓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 키워드의 나열만 가지고는 문제를 잘 풀 수 없다는 것과, 내가 공들여(?) 새겨놓은 단어들은 쓰는 동안 이미 내 머리에 대체로 각인되어서, 막상 시험 중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어제는 이 일화를 가지고 지식 암기 위주의 수업과 평가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좀 써볼까 했는데, 오늘은 생각이 바뀌어, 인간에 대한 생각을 적어볼까 한다.


1. 우리는 다중인격을 지녔다


처음에는 저렇게 모범적으로 보이는 학생이 참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사람은 누구나 복잡하고 다중적인 모습을 지닌 존재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한 측면만 보고 그 사람의 성품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매우 부정확하고 또 위험한 행위이다.


2. 우리는 변한다


부정행위를 시도한 학생도, 늘 그렇게 변칙적인 방법을 시도하는 사람으로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제 선생님의 눈빛을 읽고 불안함과 양심의 가책을 느껴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살아가면서 규칙과 질서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점차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우둔하게 편법을 시도하던 중딩이 정정당당함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입장이 된 것처럼 말이다.


3. 사람은 미완성의 존재이다


사람은 방향성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성장해 가지만, 일평생 완벽의 상태를 경험할 수는 없다. 인간은 태생 자체가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두어 주 동안 끼니를 거르고 화장실을 참아가며 진행해 온 일들이 비로소 하나씩 마무리가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또한 토요일 연주회를 앞두고 하루 10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연습을 이어간 결과 연주가 조금은 덜 엉성해지는 것을 지켜보며, 나의 인간됨을 기뻐한다.

그리고 또 다른 미완의 존재에게 따뜻한 눈길을 전한다.


미완의 아름다움을 묵상하는 밤이다.


출처: pixabay



코가 너무 막혀 소금물 소독을 하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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