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는 삶에 대한 깊은 사색과 통찰을 담고 있다.
삶에 대한 사색과 통찰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모비딕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지난 글에 이어 오늘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 우리 삶에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 중 오늘 읽은 부분에서 발견한 네 가지 질문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종교심에 대한 일갈
- p.161 하지만 종교가 광기로 변해서 당사자에게 고통을 안겨 준다면, 요컨대 우리가 사는 이 지구를 지내기 불편한 여인숙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 때는 당사자를 불러다 앉혀놓고 문제를 따져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글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성도들에게 멜빌은, 너의 신앙심은 과연 광적인 흥분 및 도취의 상태가 아닌, 구도자로서 초월자에 대해 갖는 순수하고 고결한 갈망이 맞는지를 생각해볼 것을 강권한다.
불편한 <모비딕>과 문학의 가치 - https://hn47749.tistory.com/m/275
#2. 차별적 시선과 살륙에 대한 정의
- P.178 우리(고래잡이)가 백정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백정 중에서도 가장 피비린내 나는 훈장은 군대의 지휘관들이 달고 있건만, 세상은 그들을 기꺼이 찬양한다. (중략) 너저분하고 미끈거리는 포경선의 갑판을 시체가 썩어가는 전쟁터의 참상에 비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여자들의 찬사 속에 축배를 든다.
고래잡이와 군인은 똑같이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다른 생명체를 살륙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대상과 목적이 다르고, 처우도 다르다. 귀한 기름을 얻기 위해 고래를 잡는 사람은 천하고 야만적인 뱃사람 취급을 면치 못하는 반면, 땅과 힘과 돈을 인간의 목숨과 맞바꾸는 군인은 영웅 대접을 받는다. 고래의 피를 흘리는 행위와 인간의 피를 흘리는 행위 중 어느 편이 더 잔인한가? 어느 편이라도 ’위대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과연 합당한가?
한편, 재력이 많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의 피는 배우지 못한 노숙인의 피보다 고결한가?
인공지능 시대에 기계에 충분히 대체되는 정도의 지식과 능력을 지닌 사람의 생명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거뜬히 살아남을만한 사고력을 지닌 사람의 생명보다 가치가 떨어지는가?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이 법조인이나 의료인이라면, 위의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은 과연 달라지[달라져야 하]는가?
생명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는, 온전한가?
#3. 관성의 위험성
- p.178 하지만 사람들은 의구심이 들어도 이미 그 일에 너무 깊이 발을 담근 나머지 은연중에 의구심을 스스로 은폐하려고 노력할 때가 많다.
소스라치겠는 문장이다. 괜찮고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고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에 이르렀으므로 그냥 각종 경고와 위험 신호를 모르는 척한다는 것이다.
강남의 모 학교에 근무하던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이다. 학급 학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신경안정제를 정기적으로 복용한단다. 그런데도 1등급 받아야 하고 의대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자녀를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학대하기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냥 쉬쉬하는 것이다.
수능시험의 문제점이 진작부터 지적되었으나 지금 당장 무엇을 어쩌겠냐며 변화에 대한 논의는 또 미루는 것이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수능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 반가울 따름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못 본 척하고 있는 의구심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영혼과 나의 육체와 정신을 어떻게 좀먹고 있으며, 나의 인생에 어떤 장면을 가져오고 있으며 어떤 장면을 앗아가고 있는가.
#4. 안락함으로부터 위험으로의 도피
- p. 191~192 항구에는 안전과 안락, 난로, 저녁 식사, 따뜻한 담요, 친구, 우리 인간에게 다정한 모든 것이 있다. 하지만 그런 돌풍 속에서는 항구가, 육지가, 배에게 가장 긴박한 위험이 된다. 배는 모든 환대를 피해 달아나야 한다. (중략) 그러면서 배는 고향으로 불어 가려는 바람에 맞서 싸우고, 파도가 휘몰아치는 망망대해로 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피난처를 찾겠다며 필사적으로 위험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유일한 친구가 가장 가혹한 원수라니!
환대를 피해 달아나다니. 위험을 찾아가다니. ‘배’를 찾아 타다니...? 나는 안전과 안락, 난로, 저녁 식사, 따뜻한 담요, 친구, 다정한 모든 것을 원하고 또 원한다. 오 주여, 이러한 것들을 나와 나의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세상 모든 이들이 누리고 또 누리게 해주시라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이건 개인적 성향의 차이인지, 아니면 내가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인지를 정말이지 잘 모르겠어서 더 읽으며 생각해 보아야겠다.
아무쪼록, 오늘의 생각을 도와주신 멜빌 선생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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