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허먼 멜빌의 고래 사랑, 그리고 자세함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5. 2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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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8절판), 3장(외뿔고래), 다른 말로 콧구멍고래--이번에도 희한한 이름이 붙은 경우인데, 아무래도 처음에 이 고래의 독특한 뿔을 뾰족하게 솟은 코로 오인했기 때문인 것 같다. 4.8미터 남짓한 몸길이에 뿔의 길이가 평균 1.5미터이며, 간혹 3미터가 넘거나 심지어 4.5미터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뿔은 송곳니가 턱 바깥쪽으로 길게 자란 것이며, 수평에서 조금 아래로 기울어졌다. 그런데 왼쪽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서투른 왼손잡이를 연상시키면서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 뿔인지 창인지 모호한, 상아 같은 이것의 구체적인 목적이 뭔지는 답하기 어렵다. 외뿔고래가 먹이를 잡기 위해 그걸 갈퀴처럼 이용해서 바다 밑바닥을 긁는다고 말하는 선원들도 있지만, 황새치나 돛새치의 칼날처럼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찰리 코핀은 얼음을 뚫는 데 그걸 사용한다고 말했다. 외뿔고래가 북극해 수면으로 올라오다가 얼음이 덮여 있으면 뿔을 밀어 올려서 얼음을 깬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런 추측들이 옳은지는 입증할 수 없다. (후략)

- 허먼 멜빌, <모비딕> p.244



요새 피식 대학이라는 유튜브 숏츠가 유행이라던데, 나에게는 허먼 멜빌이 피식 대학이다. 그야말로 ‘덕후처럼’ 고래에 대해 파고드는 <모비딕>의 장면을 읽다가, 나는 생각했다.

멜빌은 고래를 정말로 사랑하는구나.




사랑하면 자세해지기 때문이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고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외뿔고래(혹은 콧구멍고래)’라는 고래 이름을 들어본 일도 없을 뿐더러, 고래가 다 똑같은 고래일 뿐일 것이며, 고래를 그리라 하면 기껏해야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고 말 것이다. (아래의 이미지를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출처: Freepik





반면 다음은 허먼 멜빌과 같이 고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제작한 외뿔고래(일각고래, 일각돌고래라고 불리기도 한단다)의 그림이다.



출처: 위키백과 캡처 화면



사랑하면 사소한 다름을 지각하게 된다. 이 고래나 저 고래나 고래가 다 거기서 거기일 수 없다.




일전에 목사님께서 민수기에 열거된 제사법을 가리켜 ‘하나님의 잔소리’라 표현하신 기억이 난다. 너무도 상세하게 반복적으로 성전의 구조에 대해, 제물의 각을 뜨는 법에 대해, 제사의 순서에 대해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고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창조주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창조주가 우리를 향해 그러하듯 거룩하고 자세하고 온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도 커서, 너무도 상세한 내용을, 입이 마르도록 반복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독창성에 대해 주워들은 뒤로는) 학생들에게 독창적인 글을 쓰라고 주문하며 늘상 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세한 눈으로 대상을 관찰하고[주제를 탐구하고] 글을 쓰라고. 독창성은 자세함이고, 자세함은 곧 사랑함이라고.



철학(philosophy)은 지혜(sophy)를 사랑(phil)하는 학문이라 하지 않았던가. 인간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며 지혜를 얻고, 지혜를 사랑하기에 인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리라.



나의 수업과 업무와 매일 만나는 학생들을 향해, 세상 모든 고귀한 영혼들을 향해 자세한 눈을 허락하시기를, 그리고 학생들은 나의 수업을 통해, 자신과 서로와 세상을 향한 자세하고 따뜻한 눈을 가지게 되기를 기도하는 밤이다.
(이건 사족이자 또 하나의 결론인데, 자세한 눈이 학습력의 주요 요건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어느 교사의 잔소리, 혹은 사랑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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