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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의 베르테르,의 찬양

탐조활동을 나서는 학생들을 따라가서 배운 사실이다. 철새나 나그네새들은 여행 중 머문 곳이 안전하고, 먹이도 구하기 좋은 곳이라는 판단이 들면 계속 찾아온다고 한다. 한편 상위 포식자가 있거나, 환경오염 등으로 먹이가 충분하지 않아 지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스노클링을 즐기며 함성을 지르는 인파에 겁에 질린 물고기들이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닥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해삼(처음에는 X덩어리인 줄 알았다;;)은 사실 춤추는 게 아니라, 사람의 얼굴들과 몸에서 씻겨내려 온 선크림에 질식할 것만 같아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자, 우울해졌다. 그리고 하릴없이, 나는 선크림을 덧바른다. 이따가는 찐득거리는 선크림을 말끔히 씻어내기 위해 클렌징..

환경 2024.01.01

여행지에서

여행지에서의 밤이 힘겨울 것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피곤하기도 하고, 낯설기만 한 곳인데.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아이의 투정에, 그러게, 하고는 속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너도 어릴 때 여행 가면 밤에 많이 울었단다. 그러면 엄마는 달래고, 또 달래다가 버럭, 화를 내기도 했지. 건너 방 엄마처럼. 여행은 그런 것이다. 낯설고 불편한 곳에서, 나를 하염없이 돌아보기도, 인생들을 들여다보기도 하는 것. 어쩜 사는 모습들이 하나같으면서도 다른 모양으로 들 살아가는 것인지. 뒷목이 당겨와 이른 시각부터 한 잠 자다 깨어 언제 다시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상 2023.12.30

빛과 미소와 생명

#1. 빛 출근길, 가로등 불빛이 꺼졌다. 퇴근길, 깜빡, 하고 가로등 불빛이 켜진다. 어둠의 시간이 시작된다. 하지만 빛이 있어, 길을 밝힌다. #2. 미소 나에게 2학기 영어수업은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왜냐하면 재미있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 수업시간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학생이 수업 성찰록에 남긴 글이다. 분명 독자를 의식하고 쓸 수밖에 없는 글이지만, 그래도 참 고맙다. #3. 구급차 구급차가 지나간다. 안 멈추고 직진하는 차량 사이로, 간신히. 안전하게 신속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기를. 생명을 위해 기도한다.

일상 2023.12.29

어느 교사의 방학 전 증후군, 아니 감사 기도

방학 전 증후군, 그리고 첫 번째 감사 계속 늦잠을 잔다. 샤워하며 코를 풀 때 매일 코피가 난다. 이 주 정도 됐나 보다. 목덜미와 어깨가 심하게 뻐근한 지는 더 오래다. 자기 전엔 매일 오한이 든다. 오늘은 혀에 검은 반점을 발견했다. 방학 전 증후군 치고 이번엔 좀 심하다. 유독 극성스럽게 살아온 탓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잘 것이다. 여행 가서도, 여행 다녀와서도. 적어도 며칠은. 방학이 와서 다행이다. 참 감사하다. 두 번째 감사 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과목별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수 년 만에 처음이다. 폭풍 업무를 감당하긴 했어도, 비담임인 덕분이다. 세 번째 감사 맡아주실 분께서 일을 맡아주셔서, 어떤 일을 간신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며칠 마음 고생을 했는데, 정말 감사한 ..

일상 2023.12.28

애도

고 이선균 씨의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선균 씨를 위해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음을. 성도는 마땅히 기도해야 하는 존재인데. 비통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한 사람의 목숨과 삶이, 사람들의 무신경한 가십거리가 되지 않기를. 그의 자녀들과 아내분이 이 아픔의 시간을 잘 견뎌내기를. 그리고 우리가 모두 함께 애도하며 기도하기를.

일상 2023.12.27

교만, 몰이해, 그리고 소통

#1. 교만업무 회의를 하고 마음이 편치 않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좀 함께 짐을 져주실 생각은 없으신 것인가요? 라고 호소하듯 말하던 나의 모습이 굉장히 교만한 모습이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심지어, 우리 부서의 업무를 가져가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다른 분께 '그것은 저희 부서의 업무와 더 관련성이 높아 보입니다.'라고 말하며 짐짓 의로운 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국 그 업무를 못 이기듯 떼어 드리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마치 들으시라는 듯이. 교만했다. #2. 몰이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분의(다른 분이다) 용기 있는 저는 못 하겠습니다. 로 인해 내가 맡게 된 업무에 대하여, 엄청난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알게 되었다. 그 분..

일상 2023.12.26

헛됨에 대하여

1. 꿈이어서 다행이었던, 출근하기 전 이른 아침 시각에 어느 식당에 모여 회식을 했다. 다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분위기인데 나만 유독 자가용을 가지고 갔다. 차를 델 곳이 없어서 간신히 찾아 대고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회식을 마치고 출근 시각에 맞춰 가려하는데 일행이 다들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고 해서 나 혼자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동차 잠금 버튼을 아무리 여러 차례 눌러 보아도 차가 있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간신히 소리를 따라 찾아간 한참 떨어진 곳에는 나의 자동차가 아닌 다른 자동차가 있었고, 열쇠도 나의 열쇠가 아니었다. 출근 시각이 가까웠다. 음식점에 겨우 찾아가 열쇠를 되찾아, 다시 한참을 소리를 들어가며 자동차를 찾았는데, 시간이 많이 경과되어 주차료를 엄..

카테고리 없음 2023.12.24

성탄

#1 이제는 정말 자동차 열쇠를 찾아야 하는 순간이 왔다. 자동차 계기판에 열쇠 배터리가 다 되었음을 알리는 표시가 떴기 때문이다. 열쇠를 찾아볼 기력도 시간도 없어,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모르겠는 열쇠를 차에 두고,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다닌 지 두 달은 족히 되었나보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너무 힘들었으니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아니었으니까. #2 새벽예배 시각이 다 되어 도착했더니, 교회 주차장이 가득 찼나보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줄지어 기다리던 그 곳에서 그대로 시동을 끄고 나오는 성도들이 보였다. "여기에 주차를 해도 괜찮을까요...?" "딱지를 떼기도 해서, 예배 직후에 나오셔야 할 거예요." "아, 예..." 마음이 어려웠다. 이건 법규를 위반하는 일이고, 타인에게 피해..

일상 2023.12.22

몰두

시험지와 답안지를 배부한 후 학생 답안지에 도장을 찍는 것도, 답안지 수거용 봉투에 인적사항을 기입하는 것도 잊었다. 시험감독 교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출력해 둔 용지를 들고 입실하는 것도 잊었거니와, 시계를 들여다볼 겨를도 없었다. 수정테이프를 건네 달라며 번쩍 든 학생의 손도 수 초 후에야 발견했다. 책이 너무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주제 사라마구님 감사합니다!) (애당초 학력평가일이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학력평가일이기에 망정이지, 정기고사일이면 대형사고가 터져도 여러 건 터졌겠다.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에 일이 아닌 독서에 몰두하는 경험을 했다. 사실 일의 일환으로서의 독서이긴 하지만, 일이 더 이상 일이 아니게 된 경험이었던 것이다. 독서는 즐겁다. 기필코, 방학 때는 원 없이 책을 읽으..

도서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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