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41

세특을 쓰며 학생의 좌절감을 읽다

1학기 에세이 결과물, 2학기 에세이 결과물, 1학기 수행평가 채점표, 2학기 수행평가 채점표, 1학기 수업 성찰록, 2학기 수업 성찰록 뭉치, 그리고 1,2학기 학습지 검사 결과표를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상태이다. 차례대로 한 명씩, 한 장씩 넘겨가며 학생의 산출물의 칭찬할 만한 점과 개선점, 1, 2학기를 걸치며 향상된 점 및 특기할 점 등을 살피며 각 학생의 1년 간 영어학습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중이다. 모 학생의 세특을 작성할 차례가 되었다.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여러 차례 옆에서 권면하면 마지못해 모둠별 읽고 해석하기 활동에 참여하던, 그리고 등이 떠올랐다. 그리고 2학기 에세이는 최종본을 백지로 제출했다. 어쩌랴.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최하 평가 내용에 해당하는 문구를 써 넣..

교육 2024.01.08

교육도 양보다 질, 혹은 범위보다 깊이

1. 깊이에 대하여 熟익을 숙 익다, 영글다, 익숙하다, 완전한 데까지 이르다, 곰곰이, 유심히 등의 의미를 지닌 한자어이다. 완숙(完熟), 숙성(熟成), 심사숙고(深思熟考), 숙독(熟讀), 숙의(熟議) 등의 단어에 쓰인다. 모두가 너무 바쁘고 너무 분산되어 있는 이 시대, 특히 밤 12시 전 주문하면 새벽 7시 전 배송을 보장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한 장소에, 책 한 페이지에, 시 한 줄에 진득하게 머물러 생각에 잠기는 것이 도통 허락되지 않는다. 熟의 개념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만 해도 책을 50쪽도 읽지 않고 책에 대한 글을 올리는 만행을 저질러왔기에 할 말은 없다.) 2. 학습의 깊이에 대하여2.1. 시험범위가 적어도 변별이 가능하다지난 2학기 기말고사 영어 시험 범위는..

교육 2024.01.07

관찰하는 눈, 따뜻한 마음, 그리고 교사의 꿈

#1. 관찰하는 눈 나를 닮은 조카가, 양손을 깍지 낀 상태에서 열심히 마사지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두텁고 커다란 나의 손과 그들의 손을 번갈아 쳐다보던 눈빛들, 그리고 무신경한 말들. 나의 조카도 겪어내고 있구나. 자신의 손을, 그리고 손을 물려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원망스럽겠구나. 잠시 고민하다가, 이야기했다. 00이가 고모를 닮아 손이 큰데, 고모보다는 훨씬 손이 예쁘네. 조카가 살면서 감내야 할 아픈 말들을 조금은 상쇄해 주는 완충제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조카가 미소 지었다. 다행이었다. #2. 따뜻한 마음, 그리고 교사의 꿈 7년쯤 전인가, 콤플렉스 극복기[방안] 수행평가를 했다. 깡마른 몸이 콤플렉스인 주인공이 결국 자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

교육 2024.01.06

알찬 방학을 보내기 위한 몸부림 (feat. 성취하는 습관)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삶은 수험생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교사인 저도 휘몰아치는 학년말 업무를 마치고, 가족 여행도 다녀와서 당장 많은 시간이 주어지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여행 후 빨래 및 짐 정리 등을 하고 나니 벌써 새해 4일째인 어제 하루가 홀랑 지나갔고요. 개학을 앞두고 아무것도 해낸 일이 없이 지나가버린 세월에 대한 후회로 우울해지고 싶지 않아서, 오늘은 시간대별 계획을 세워 보았습니다. 계획을 세워 성취해 나가는 것은 삶의 활력을 더해주고, 따라서 무력감과 우울감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니까요. 1. 아침에 계획을 세운다 오늘 해야 할 일 목록을 만들어 봅니다. 생각나는대로 마구 적어봅니다. 일단 할 일들을 가시화하고 나면 불안과 염려가 조금은 해소될 것입니..

교육 2024.01.05

기념품점을 나서는 사람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온다. 예쁜 아이템을 들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오는 이도 있고, 구매 의사는 있으나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하거나 환전한 금액이 부족하여 심드렁한 표정도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동행인(주로 부모)의 반대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아이의 얼굴이다. 하지만 얘야, 그거 아니? 기념품의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을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말렴.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호텔 인터넷 안녕. 사이판 안녕.

일상 2024.01.03

Such a Flirt 혹은 Attaining Art of Loving

스노클링 강사와 희롱하는 여성을 보고 슬픔이 밀려온다. 아이돌 댄스를 끊임없이 따라 추는 소녀의 모습에 불안해진다. 에리히 프롬은 에서 분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일’을 추구하는 일을 사랑이라 정의하였고, 지극히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형태인 성적인 합일을 미성숙한 사랑으로 분류하였다. 종족 유지와 번식 위한 본성의 영역인 것이다. 사랑받으며 살아가고자 하는 저마다의 외침인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았던가. 김훈 님은 노인으로서 키스하는 연인들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도 좋다 했는데. 그 덧없음과 허망함에, 나의 마음은 일그러졌네.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고 또 표현하고자 하는 타자의 욕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밤하늘에 총총한 별을 올려다본다.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일상 2024.01.03

여행지의 베르테르,의 찬양

탐조활동을 나서는 학생들을 따라가서 배운 사실이다. 철새나 나그네새들은 여행 중 머문 곳이 안전하고, 먹이도 구하기 좋은 곳이라는 판단이 들면 계속 찾아온다고 한다. 한편 상위 포식자가 있거나, 환경오염 등으로 먹이가 충분하지 않아 지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스노클링을 즐기며 함성을 지르는 인파에 겁에 질린 물고기들이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닥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해삼(처음에는 X덩어리인 줄 알았다;;)은 사실 춤추는 게 아니라, 사람의 얼굴들과 몸에서 씻겨내려 온 선크림에 질식할 것만 같아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자, 우울해졌다. 그리고 하릴없이, 나는 선크림을 덧바른다. 이따가는 찐득거리는 선크림을 말끔히 씻어내기 위해 클렌징..

환경 2024.01.01

여행지에서

여행지에서의 밤이 힘겨울 것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피곤하기도 하고, 낯설기만 한 곳인데.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아이의 투정에, 그러게, 하고는 속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너도 어릴 때 여행 가면 밤에 많이 울었단다. 그러면 엄마는 달래고, 또 달래다가 버럭, 화를 내기도 했지. 건너 방 엄마처럼. 여행은 그런 것이다. 낯설고 불편한 곳에서, 나를 하염없이 돌아보기도, 인생들을 들여다보기도 하는 것. 어쩜 사는 모습들이 하나같으면서도 다른 모양으로 들 살아가는 것인지. 뒷목이 당겨와 이른 시각부터 한 잠 자다 깨어 언제 다시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상 2023.12.30

빛과 미소와 생명

#1. 빛 출근길, 가로등 불빛이 꺼졌다. 퇴근길, 깜빡, 하고 가로등 불빛이 켜진다. 어둠의 시간이 시작된다. 하지만 빛이 있어, 길을 밝힌다. #2. 미소 나에게 2학기 영어수업은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왜냐하면 재미있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 수업시간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학생이 수업 성찰록에 남긴 글이다. 분명 독자를 의식하고 쓸 수밖에 없는 글이지만, 그래도 참 고맙다. #3. 구급차 구급차가 지나간다. 안 멈추고 직진하는 차량 사이로, 간신히. 안전하게 신속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기를. 생명을 위해 기도한다.

일상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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