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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소거되었던 소음이 돌아오고, 차를 몰아 집으로 출발해 오면서 문득,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몇 자 읽었다.
살아있으므로.
p.25 수감자에게는 모두 번호가 있었고, 그들은 번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p.26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중략)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p.15 (추천의 글) 반면에 프랭클은 신경질환을 여러 형태로 분류한 다음, 그 중에서 누제닉 노이로제와 같은 몇 가지는 환자가 자기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가 성적인 욕구 불만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 프랭클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에 초점을 맞추었다.
p.17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생명이 바로 의미이다.
덧) 이와중에 에세이 뭉치를 한 번도 집에 가져오지 않고 학교에서 1차 채점을 끝냈다. 만세!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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