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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1장 독서일기 - 죽음을 둘러싼 표정들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10. 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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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스토리 전개에 푹 빠져들어 읽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오늘부터는 느린 속도로 2회독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각 장의 독서일기를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장은 죽음을 둘러싼 서로 다른 '표정'들을 주제로 기록을 남기려 합니다.
 

출처: 교보문고 인터넷 서점

 
 
 

죽음을 둘러싼 표정들

 
1장에는 표정이라는 단어가 11번이나 나옵니다. 뿐만아니라 눈짓, 시선 등 얼굴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톨스토이는 독자로 하여금 각 등장인물의 표정과 이에 드러난 심경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떠올리며 책을 읽기를 바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 이반의 표정

얼굴에는 해야 할 일을 완수했다는, 그것도 바르게 완수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또한 그 표정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향한 나무람과 경고도 담겨 있었다. (13)

 
법학원을 나와 법원 의원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는 삶을 살다가 죽은 이반의 표정입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나옵니다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과 씨름하다가, 마침내 죽음으로써 죽음이 더는 없어지게 되는 상태에 이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떠오르네요. 아무쪼록 한평생 세속을 좇다가 고통스럽게 죽어간 이반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허무한 것을 좇아 살지 말라고 엄중한 경고를 하는 듯합니다.
 
 
 

2. 슈바르츠의 표정

분명 오늘 저녁 어디서 빈트(러시아의 카드놀이)를 하면 좋을지 이야기하고 싶은 눈치였다. (12)
장난기 가득한, 깨끗하고 우아한 슈바르츠의 모습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중략) 그의 표정을 보면 이반 일리치를 위한 추도식이 저녁 모임의 질서를 깨뜨릴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14)
두 사람은 표토르 이바노비치에게 아쉬운 눈짓을 보내는 슈바르츠를 지나 내실로 향했다. (중략) '빠져나올 수 있으면 다섯 명이서 하시든가.' 그의 장난기 어린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15)

 
의기양양하고 젊고 왕성한 슈바르츠는 동료 이반의 죽음에 추호도 관심이 없습니다. 추도식 이후 진행될 카드놀이를 상상하며 장난기 어린 시선을 던질 뿐입니다.
 
 
 

3. 표트르 이바노비치의 표정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자리에선 늘 그랬다. 이런 경우 성호를 그으면 아무런 탈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12)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는 그 표정이 내는 경고가 적절치 않아 보이거나, 적어도 자기와는 관련 없다고 여겼다. (14)

 
이반의 동료인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법학원 시절부터 이반 일리치를 알아온 오랜 지기이며, 1장에서 가장 많은 심경 변화를 보이는 인물입니다. 그는 이반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듣고는, 차남을 자기 지역으로 전근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내에게 말합니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누군가의 다행스러운 '기회'로 여기며 상가에 간 그는, 이반 일리치의 비참한 죽음 앞에서 자신과의 관련성을 찾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는, 동료 슈바르츠의 눈짓과 표정을 곧장 이해하(고 아마도 심정적으로 매우 동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이반 일리치의 진실한 벗'이라고 칭하는 이반의 부인에 이끌려, 카드놀이에 합류하라는 슈바르츠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못하고 추도식에 참석하는 안타까운 처지가 되지요.
 

매우 가깝게 알고 지내왔던 한 인간이 겪은 고통에 관한 생각이 들자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자신과 부인이 가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인식으로 불쾌하면서도, 문득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18)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자기 눈앞의 발을 바라보면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20)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향, 시신, 소독약 냄새를 맡다가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니 상쾌했다. (20)

 
죽음이 가져오는 불쾌함과 두려움, 우울함을 빨리 떨쳐내려는 듯 추도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을 빠져나온 그는 상쾌한 저녁 공기를 마시며 카드놀이 장소로 향하며, 다행스럽게도 '다섯 번째로 게임에 참가하기에 딱 좋은 시간'에 도착합니다.
 
 
 

4.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의 표정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마치 희생자 같은 표정으로 표트르 이바노비치를 바라보며, 프랑스어로 자신이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16)
그러나 그는 그녀가 남편의 사망과 관련해, 재무성으로부터 받아낼 만한 것은 자기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받아낼 길은 없는지 알아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19)

 
이반의 미망인이 지어 보이는 희생자 '같은' 표정을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유식하게도 '프랑스어'로 자신의 힘겨움을 토로하는 모습과, 추도식이 시작되기 전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여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법적 자문을 구하는 모습에 비친 그녀 내면의 욕구를 들여다봅니다. 
 
 
 

5. 이반 일리치의 딸과 약혼자의 표정

 

그녀는 음울하고 결연한, 거의 화난 표정이었다. 그녀는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양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중략) 젊고 부유한 젊은이가 똑같이 성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그녀의 약혼자라고 알려진 치안판사였다. (19)

 
이반 일리치의 딸과 그녀의 약혼자는 화가 난 듯이 보입니다. 아버지 자신이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온 가족을 못살게 굴어서 그랬는지, 결혼을 앞둔 시기에 돈을 마련해주지는 못하고 세상을 저버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버지가 죽어가는 동안 여전히 직위를 건재하게 유지하고 있던 동료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질투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원망을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기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부재한 상태인 것만은 명확해 보이네요.
 
 
 

6. 이반 일리치의 아들의 표정

 

계단 아래로부터 이반 일리칠 쏙 빼닮은, 김나지움에 재학 중인 아들이 나타났다. (중략) 눈물로 얼룩진 눈은 부정한 생각을 하는 열서너 살 먹은 소년의 눈 같았다. (19)

 
이반 일리치를 많이 닮은 아들의 눈은, 눈물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이 눈을 보고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법학원 재학 시절 음탕한 일탈을 시도했던 동료의[동료와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아마 자기 연민의 감정이 지배적이었을 법한 프라스코비야의 눈물과는 사뭇 비교되는 눈물입니다.
 
 
 

7. 부사제의 표정

 

프록코트를 입은 활기차고 단호한 모습의 부사제는 어떤 이견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표정으로 큰 소리로 뭔가를 읽고 있었다. (13)

 
한편 죽음의 의식을 담당하는 부사제는, 결연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감정은 읽을 수 없이 의무를 다하고 있는 그는, 다른 인물들과 심리적 거리가 가장 먼 듯 보입니다. 액자 바깥에 나와 있달까요, 아니면 홀로 (아니면 이반 일리치와, 이반 일리치의 아들과, 부사제 셋이 유일하게) 한 인간의 죽음을 마주하고 있달까요.
 






죽음을 둘러싸고 참으로 많은 표정들이 보이네요. 이 순간에도 누군가 죽어가는 중이겠지요. 우리 모두가 죽음에 가까워지는 중이고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 어떤 표정들을 짓고 있는지요? 혹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요?
 
 
 
우리들의 호흡과 걸음이 복되기를 소망합니다.
평안한 밤과 기쁜 새날 맞이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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