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용서가 제일 어려워

글을써보려는사람 2025. 1. 2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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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성경을 펴들고 큐티를 하다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이웃'이 아니라 '죄'며, '형제자매'가 아니라 내 안의 '미움'입니다.'라는 구절에서 잠시 마음이 머뭇거렸습니다. 제가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지점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죄악의 문제나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아서 그렇겠지요. 특히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타인'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이어가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국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으로 인해 가장 힘든 상태인 것은 '나'임을 알면서도, 피해의식을 떨쳐버리기가 참으로 힘겹습니다. 오늘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용서는 힘들다

 

1.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해?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명백히 잘못한 사람이 있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는 용서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비윤리적 행동이나, 심지어 범법 행위의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러한 사건과 배경에서는 그러한 행동을 할 만도 했지'하고 이해하고 넘어가기가 어렵겠지요. 심지어 피해를 입힌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말하거나 반성하는 기색이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 용서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타인을 미워하지 않고 '죄'를 미워하며, 심지어 타인의 미래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해주기란 참으로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2. 기독교인인데 용서를 못 해?

 
어제 마침내 완독한 <명령에 따랐을 뿐?!>에는 기독교인으로서 용서해야만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으로 인해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가 어려운 상태였던 집단 학살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나 스스로도 용서 받은 죄인이므로 용서해야만 한다'는 말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에서 문자적 의미만을 인지적으로 되뇌인다면, 용서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일종의 강박관념을 형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용서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야?

 
또한 '용서할 수 없다' 혹은 '용서했다'와 같이 단편적으로 용서를 정의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점도 용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인 것 같습니다. '상대가 어떤 상태일 때 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완전히 용서를 한다는 것은 어떤 마음의 상태가 되어 내가 타인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게 된 상태인 것인가' 하는 등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하니까요. 심지어 가해자가 특정 개인이 아닌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일인 경우, 문화나 구조적 요인 등 실체가 없는 경우, 혹은 책임이 양측[혹은 셋 이상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 모두에 있는 경우 등의 상황에서는 용서의 양상이 더욱 복잡해지므로 깔끔하고 온전한 용서에 대해 논하기란 더욱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가해자도 힘들다

 
<명령에 따랐을 뿐?!>에서 집단학살의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비슷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을 관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피해를 입은 쪽도 고통을 겪지만, 가해자 측에서도 정신 건강 악화, 중독의 문제와 같은 고통을 겪으며, 심지어 이러한 고통이 대물림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연구 결과 확인하였다고 하네요. 욕설을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크게, 지속적으로 자신이 내뱉는 욕설을 듣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인 것일까요? 타인을 해치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해하고 있는 모습인가 보네요. 참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니, 매 순간 누군가에게 이로운 결정과 행동을 하지는 못할지언정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막상 사건을 겪을 때에는 정신이 없어 그 사건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지 못하다가, 방학을 맞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기니 스스로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고, 그러면서 감정 반응이 한꺼번에 올라왔다가, 정리 되었다가, 또 마구 올라오기도 합니다. 뭐, 이러면서 이겨내고 있는 중이겠지요. 장기적 관점에서 저의 내면이 성장하는 중일 테고요.
 
확실히 글로 표현을 하니 격해지기도 하던 감정이 해소되고 생각이 조금은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용서 받아온 나날도 (이제야) 떠오르고요.
 
 
 
교사로서, 새학기에도 학생들이 자신과, 타인과, 그리고 세상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돕는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매사 평안하고 형통하시며,
화해와 회복으로 가득한 2025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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