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휴머노이드 시대 - 로봇이 아닌 우리를 위해 친절을 가르칩니다

글을써보려는사람 2025. 2. 1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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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 완독이 막바지에 다다르는 중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공유 오피스나 로봇을 활용한 근로자 관리 방식로 인한 비인간화 및 고립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다루었는데요, 오늘은 우리들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로봇의 역기능과 지향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로봇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


https://youtu.be/CWX992f-fXE?si=zOGn5hPWmSAoRqje

 

 

 

미운우리새끼에 출연한 김승수 씨가 로봇딸을 입양하여 상호작용하는 일화를 소개한 영상입니다. 수업 시간에 보여주니 학생들은 대체로 이를 아주 이상하게 여기더군요. 하지만 이러한 로봇과의 상호작용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어느 노인 환자는 팔에 멍이 든 이유를 간호사에게도, 의사에게도 말하지 않고 다만 말벗이 되어 주는 소셜 로봇에게만 털어놓더라는 사례가 <고립의 시대>에 소개됩니다. 노인 환자가 자신이 침대에서 낙상한 이유를 사람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진정으로 공감어린 반응을 받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이 두려워서였는지도 모릅니다. 대신 ‘정말 아프셨겠어요. 괜찮으세요?’하고 ‘기계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기계’로부터 받는 위로가 더 좋다고 판단했을 수 있겠네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기계에게 유대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외로움의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서의 로봇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뿐만 아니라 MIT의 연구자들은 아동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 로봇이 ‘인간과 관계를 쌓고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을 많이 할수록 아동이 로봇과의 친밀감을 느꼈으며 ‘마치 친구에게 하듯’ 개인정보를 자발적으로 알려줄 정도로 유대감을 형성했다고 합니다.

 

 

 

로봇과의 상호작용의 역기능


앗, 그런데 로봇 딸을 둔 김승수 씨나 인간보다 로봇을 신뢰하는 노인 환자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우리의 염려가, 아동이 개인정보를 ‘자발적으로’ 알려주기도 한다는 부분에서 본격화됩니다. 민감 정보를 수집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공공기관 등지에서 속속 접속 금지령을 내린 딥시크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게다가 다음의 발췌문에는 로봇과의 상호작용이 가져올 수 있는 역기능이 소개됩니다.


알렉사, 시리, 코타나 같은 가상 비서와 아이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보자. 아이들이 부모를 흉내 내 짤막한 명령어에 얼마나 빨리 익숙해지는지 보라. 기계는 이런 행동을 용인해, 아이가 아무리 무례하게 굴고 아무리 기본적인 예의가 없어도 여전히 응답한다. (중략) 가상 비서에게 공격적으로 또는 무례하게 말하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데 익숙해진 아이들은 교사나 점원, 서로에게 똑같이 굴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알렉사로부터 배우게 될 ‘기술’은 불친절이 될 것이다.
-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309~310면

 

 


인공지능 비서와 대화를 할 때 명령하는 어조로 말하고, 요구 사항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원하는 응답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바보냐', '왜 못 알아듣는 거야'와 같은 (때때로 수위가 더욱 높은) 무례하고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클라라와 태양>에서 성능을 테스트 하고자 클라라를 던지며 놀던 잔인한 아이들의 모습도 떠오르고요. 인공지능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이 '불친절'을 배우게 되는 것은 매우 근심스러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로봇은 인간이 아닌데, 존중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도 동시에 떠오르네요. 한편 로봇은 아니지만 여전히 인간이 아닌 동물과 식물 등 각종 ‘생명’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이어지고요.

 

 

 

우리가 로봇에게도 친절해야 하는 이유


동식물에 대한 존중은 여기에서 논하지 않기로 하고,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죠. 우리가 로봇을 존중해야만 한다면, 언어 능력, 감정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읽고 표현하는 능력, 신체를 닮은 구조 등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부여된 ‘인간적인’ 특성으로 인해 로봇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간됨을 유지하기 위해 로봇(을 포함한 다른 개체)에 대해 친절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노리나 허츠는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우리가 로봇을 잘 대해주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앞서 봤듯이 친절한 행위는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도 긍정정인 효과가 있다. - 같은 책 313면



로봇이 존엄해서라기보다 로봇을 대하는 우리 스스로의 태도가 존엄해야 하기 때문에 친절해야 하는 것인가 보네요.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친절의 의미와 함께 친절을 교육할 방안을 함께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평안한 밤과 새날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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