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껍고 무거운 책인데 생각보다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인간이 이성적 생각을 작동시키기에 게으르다는 점, 따라서 오류가 많은 직관적 사고에 의존할 때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 우리의 집중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 등 굉장히 흥미롭고 유익한 점이 많아 메모를 해가며 읽는 중이다.
100쪽 남짓 읽어놓고 서평을 쓰기는 카너먼 선생님께 참으로 죄송스러우나, 읽으면서 든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은 향후 숙독과 숙고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포스팅을 시작한다.
첫째, 수업이나 학급운영에의 시사점이 많다.
인지적 편안함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수업 초반에 긍정적인 어휘나 비언어적 사인을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 연관성이 높은 개념끼리 묶어서 제시함으로써 학습이 잘 일어나도록 도우면 좋겠다는 점, 적절한 반복 학습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점, 학습유인물의 구성은 알아보기 쉽게 하고, 중요한 내용의 글자 굵기 및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 학생의 글씨체가 평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학기 쓰기 수행평가 최종본은 인터넷 파일로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점, 서논술형 채점을 할 때 포도당을 적절히 섭취하며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점, 학급 분리수거함이나 쓰레기통 주변에 눈 그림을 붙여 놓아 학생들이 무의식 중에 도덕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게 할 수 있겠다는 점 등이 내가 떠올려본 것들이다.
한편 평가자인 내가 공복 상태이거나 숙면을 취했는지의 여부가 학생들의 점수에 영향을 미쳐왔고, 앞으로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게다가 서논술형 수능 도입 관련 논의와 관련하여,) 채점 효율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AI기술을 활용한 평가시스템이 속히 개발되면 좋겠다는 점도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둘째, 나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의 한 켠에 스며들기도 한다.
심리학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타인을 조종하거나 이용하려는 의도로 쓰이기도 쉽겠다는 점과, 내가 그동안 직관에만 의지하여 사실과 다르게 추측해 온 것들도 상당히 많겠다는 점을 더욱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를 들어 내가 평소 미소를 잘 짓는다는 점이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나쁘게 말하면 타인의 나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을 둔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은연중에 사용되어 왔을 수 있겠다는 점[또는 나도 이러한 면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를 마지않았다는 점!!!], 혹은 나의 어떤 특성[심지어 미소 짓는 특성조차도 때로는!!]이 (특정) 타인의 부정적 감정을 조성해 왔고 또 이것이 차후의 행동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쳐왔겠다는 사실 등을 나는 깨닫게[혹은 상기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나의 자의식이 강화되면서 다소 위축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셋째, 자연히 나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바라보게 된다.
나의 판단력이나 기억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 다른 말로 하면 내가 확고하게 의존하고 신뢰하고, 기억하는 생각이 실상과는 일부 다르거나, 아예 틀렸을 수도 있다는 점을, 썩달갑지 않더라도 나는 인정해야만 한다. 또한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려갈 결정들이 자칫 잘못하면 전혀 옳지 않은 방향으로 아주 쉽게 흐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겸허한 마음을 품는다. 하늘 아래 내가 도대체 교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론
특히 나이가 듦에 따라 내가 타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도 (어느 정도까지는) 커질 수 있음을 고려할 때, 합리적 사고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직관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리고 아집이 강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며, 하늘의 지혜와 도우심을 구해야겠다. 그리고 정진해야겠다[책을 끝까지 잘 읽어야겠다].
궁극적으로는 나의 인생이 세상을 조금은 더 이롭게 하는 데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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