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세특을 쓰며 학생의 좌절감을 읽다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1. 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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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에세이 결과물, 2학기 에세이 결과물, 1학기 수행평가 채점표, 2학기 수행평가 채점표, 1학기 수업 성찰록, 2학기 수업 성찰록 뭉치, 그리고 1,2학기 학습지 검사 결과표를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상태이다.
차례대로 한 명씩, 한 장씩 넘겨가며 학생의 산출물의 칭찬할 만한 점과 개선점, 1, 2학기를 걸치며 향상된 점 및 특기할 점 등을 살피며 각 학생의 1년 간 영어학습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중이다. 
 
모 학생의 세특을 작성할 차례가 되었다.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여러 차례 옆에서 권면하면 마지못해 모둠별 읽고 해석하기 활동에 참여하던, 그리고 등이 떠올랐다. 그리고 2학기 에세이는 최종본을 백지로 제출했다.
 

출처: pixabay

 
 
 
어쩌랴.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최하 평가 내용에 해당하는 문구를 써 넣었다.
 
 

소설을 읽고 진행한
영작 활동에 때때로 임함.

 
 
그런데, 내가 한 명 한 명 학생의 특성과 성향을 제법 파악하기 전이었던 1학기에는, 해당 학생이 성찰적 에세이를 나름대로 잘 작성하여 결과물을 냈던 것을 발견했다.
 
한 학기를 지내는 동안 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출처: pixabay

 
 
위에서 언급했듯 거의 매 시간 부드럽게 권면하면 그제야 발동이 걸려 해 보려는 자세를 취하곤 해서, 수업 진행 시 공이 제법 많이 드는 학생이긴 했지만, 분명히 나와 눈도 잘 맞춰가며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러고 나서 다시 들여다보니, 백지로 제출한 2학기 최종본에 나름대로 한글로라도 몇 줄 적었다가 지운 흔적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과정 평가를 위해 수합한 한글 개요도, 어휘 목록도 제법 열심히 작성해서 제출했다.
 

출처: pixabay

 
 
한글 개요와 어휘 목록만 참고할 수 있고, 대체로 암기하여 작성해야 하는 최종 결과물 작성을 앞두고,
아이는 좌절감을 느꼈던 것이다.
 
2학기에는 에세이 수행평가를 앞두고 조직적으로 학원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학생들이 상당히 눈에 띄기에, 평가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마련한 자구책이 사전에 작성 제출한 어휘 목록만 참고하고 휴대폰 없이 최종본을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물론 과정에 대한 점수는 후히 부여했지만, (그리고 아이는 제가 8점이에요? 하며 자신의 점수에 제법 만족스러워했지만)
공정과 정의에 대한 의지가 아이의 용기를 꺾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출처: pixabay

 
 
황급히 위의 문구를 삭제하고, 다음과 같이 고쳐 썼다.
 

공감적 읽기를 통해 소설을 읽고 진행한 영작 활동에 임함. 모둠별 읽고 해석하기 활동에 충실히 임하려 노력함.

 
이라는 문구를 써넣었다.
 
2학기 에세이에 대해서는 아예 빈칸으로 남겨두었다가,
 

환경문제에 대한 에세이 개요를 작성하고 영어 표현을 열심히 정리함.

 
이라고 적어 넣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이가 보인다.
 
 
 
 
한글로라도 몇 자 적었던 것을 슥슥 지워버리며 지었을, 학생의 쓴웃음이 보인다.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출처: pixabay

 
 
 
2022 개정 교육과정 도입과 함께 내신 성취 평가를 기존 9등급에서 5등급제로 개편하기로 한 것이 다행스러운 결정으로 느껴진다.
 
고민을 멈추지 않는 교육자가 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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