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운전자 보험 안 든 분이라고 메시지가 떠서 놀라셨다고,
도로교통법이 보행자 위주로 바뀌어서 잘못하면 구속 수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이 법은 횡단보도, 교차로, 스쿨존 등에서 일어나는 (심지어 내 차를 보고 놀라 넘어지는 등) 차량 비접촉 사고에도 적용이 된다고,
큰.일. 난다고 겁을 주셨다.
주신 겁을 단단히 집어 먹었다.
설명이 이어졌다.
보행자 위주로만 처리 되어서 억울한 상황 맞지 않으려면...
가만, ...억울하게?
생각이 시작되었다.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일주일 간 틈틈이 생각을 이어갔다.
물론 스쿨존, 노인보호 구역 등 속도 제한이 있는 곳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고, 교차로 신호가 바뀌었는지 정말 모르고 사고를 낸다면... 심지어 급정거를 했는데 놀라서 넘어진 사람이 운전자인 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아니면 넘어지는 척을 했다면...
정말이지 억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살인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명사고를 낼 수 있기에, 면허를 취득한 사람에 한하여 운전이라는 위험한 행위가 허락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차로나 노인보호구역을 지나면서, 사람이 당연히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속도를 낮추어 운전하는 것이 운전자의 기본이다. "내가 (속도가 좀 빠르긴 했지만) 멀쩡히 갈 길 가고 있는데 저 녀석이 끼어든" 뭐 그런 상황으로 설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 잠시 살러 갔을 때 놀란 점은, 보행자는 당당히 건너고 운전자는 당연히 멈춰 선다는 점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놀란 점은, 운전자는 당당히 가고, 보행자는 눈치를 본다는 점이다.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인 것 인정, 나도 보행자를 기다리게 만드는 순간이 슬그머니 많아진 것도 인정.)
심지어 짓궂은 장난 한답시고 스쿨존에서 차량으로 뛰어드는 아이들마저 있다 손 치더라도,
(이건 정말 어려운 상황이긴 하다. 살면서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자신의 행위가 유발할 수 있는 결과와 책임감에 대해 호되게 꾸짖으며 가르칠 일이지, 어찌 되었든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에서 전방 주시 의무를 태만히 한 것을 '억울함'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정당화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장시간 설명 해주셨는데 죄송하게 되었네요,
전화를 끊고 문서 작성을 마저 하다가 인터넷 창을 열었는데,
김영희씨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로 인해 극단 선택까지 시도했다는 그녀의 말에, 이걸 어째, 소리 없이 탄성을 내지른다.
김영희 "사람들에 상처, 죽어야 끝나겠구나 싶었다…수차례 극단적 선택 시도" 고백 (daum.net)
사람으로 인해 또한 살아갈 마음을 먹었다는 말에, 안도한다.
어찌됐든, 그래도 살만한 세상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온도를 지닌 채 살아가고 싶다.
그런 온도들에 둘러싸여, 나도 잘 살아가게,
안타까운 사고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결론: 운전자 보험을 들 때 들더라도 운전자의 기본을 잘 새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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